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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다 망쳤어요"…이상기후에 농민도, 소비자도 시름 [르포]

손의연 기자I 2024.08.01 05:00:00

■밥상 덮친 ''기후플레이션''
장마 전선, 물러가지 않고 반복해 비 뿌려
농가 "폭우에 폭염에 농사 망쳐…생계 걱정"
소비자 "야채 구매 부담스러워…대책 필요"

[금산(충남)=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황병서 기자] “사실상 전 농가가 타격을 받았어요. 당장 생계부터가 걱정이죠.”

18일 충남 금산 추부면. 깻잎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이번 폭우로 쓰러졌다. (사진=손의연 기자)


◇ ‘이상기후’ 어려움 매년 반복…“농민 지원 필요해”

지난달 18일 충남 금산군에서 만난 한 농민은 비를 뿌릴 조짐을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에도 수도권 등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누적 강수량은 150㎜에서 380㎜가량으로 지역마다 호우주의보나 호우경보가 내렸다.

금산 추부면에선 걸음을 조금만 옮겨도 폭삭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나 군데군데 무너진 비닐하우스를 볼 수 있었다. 비닐하우스 내부는 더 심각한 모습이었다. 지난 폭우 때 빗물이 가득 찬 여파가 그대로였다. 사람 키 높이까지 토사물 흔적이 남아 있었고, 빗물에 둥둥 떠다니던 물건과 기계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는 농민은 여기저기 분주하게 몸을 움직이며 수습에 나섰다.

인근에 깻잎이 남아 있는 채모씨의 비닐하우스도 처참하긴 마찬가지였다. 잎들이 한창 싱싱하게 뻗칠 시기지만 진흙이 묻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다. 논농사는 물이 빠지면 벼를 재배할 수 있지만. 깻잎은 침수되면 그대로 상품성을 잃어 농민들이 손을 놓을 수밖에 없다는 게 채씨의 설명이다.

‘이상기후’로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올해 장마가 좁은 지역을 오가며 큰 비를 쏟아붓는 것이 반복돼 복구작업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도 자연재해가 잦아짐을 인지하며 배수로 정비 등 사전 대비와 농민 지원 등 사후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양인호 금산 추부깻잎연합회장은 “보험 같은 것도 정비가 필요한데, 깻잎 경우 특용 상품이라고 해서 정부의 농작물재해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이번에 사실상 금산 모든 깻잎 농가가 피해를 봤다고 보면 된다”며 “재해가 일어난 후 긴급생계비나 대출같은 지원도 필요하다. 재기를 위해 다시 농사를 지어야 하지만 당장 생활이 어려워지는 농민도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충남 부여에서 상추를 재배하는 40대 김모씨 비슷한 걱정을 토로했다. 김씨는 “매년 그렇지만 여름만 되면 채솟값이 널뛰기한다. 일정한 주기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자연재해를 피해 갈 수 없으니 예상 불가인 상황”이라면서 “올해도 수해가 일어나서 상추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올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름 상추는 도박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같은) 장마철엔 재배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고 말했다.

◇소비자들 “야채가 금값”…자영업자 “식당 운영 부담, 마감시간 골라 장 봐”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마트에서 소비자가 채소를 고르고 있다.(사진=황병서 기자)
이 같은 폭우·폭염에 따른 농가의 피해는 최종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장마철 침수 피해로 상추, 깻잎, 시금치 등 채소 등의 가격이 오르면서 ‘밥상 물가’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어서다. 실제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에 따르면 7월 31일 적상추 소매가격은 100g에 2152원으로 한달 전 953원보다 126%가량이나 올랐다. 상추와 함께 대표적인 쌈 채소인 깻잎도 100g 당 2638원으로 전월보다 26.04% 올랐다. 같은 기간 애호박 역시 1880원으로 76.3%, 시금치는 1792원으로 103% 상승했다.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마트의 야채 코너에서 만난 사람들도 채소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며 가격을 살폈다. 전업주부 김모(53)씨는 “지난해보다 가족 식비가 20% 올라 장을 볼 때면 항상 걱정이 앞선다”면서 “상추나 깻잎 좀 사서 먹으려 해도 상추 한 봉에 5000원돈 하는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추가 비싸면 깻잎이라도 저렴해야 하는데 같이 비싸니까 쌈 채소로 살 수 있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안모(58)씨는 “야채 값이 장난이 아니라서 매번 사 먹으려고 해도 손이 가지 않는다”면서 “장마철 때문인 것 같긴 한데 정부에서 조치라도 취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근 은평구 수색동의 한 마트에서 만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포구에서 백반집을 운영한다는 이모(65)씨는 “물가 오르는 게 무섭다”면서 “마감 시간에 장을 봐야 그나마 저렴한데, 지금은 야채가 갑자기 부족해서 급하게 왔지만, 구매할 때마다 부담스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모(55)씨는 “작년에는 남편이 주말농장을 해서 상추나 깻잎을 살 필요가 없었는데 올해는 안 하는 바람에 마트에 와서 사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면서 “손이 잘 가지 않는다. 텃밭에 키워야 할 판이다”고 말했다.

18일 충남 금산의 한 깻잎 농가. 빗물에 잠겨 토사물이 남았다. 이런 깻잎은 상품성을 잃어 판매할 수 없다. (사진=손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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