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중립이야 시대적 사명이니 무어라 시비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소비자 처지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무탄소 발전 비중을 70%까지 늘릴 때 총비용은 얼마인지, 그래서 가계와 기업은 매년 얼마나 더 부담해야 하는지, 또 전기는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하지만 정부의 11차 전기본 보도참고자료 어디에도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러면 전기요금은 얼마나 오를까. 대략 추산해 보면, 2038년 전기요금은 2022년 대비 최소 15% 이상 오른다. 2022년의 발전원별 발전 단가와 2022년과 2038년의 에너지원별 발전 비중 차이만을 단순 고려했을 때 말이다. 원자력은 1킬로와트시(㎾h)를 생산할 때 52원이고 석탄은 158원, 액화천연가스(LNG)는 239원, 재생에너지는 271원이다. 재생에너지를 8.4%(2022년)에서 32.9%(2038년)까지 확대함에 따른 전력 계통 안정화 비용 등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전기요금 인상 폭은 20%를 훌쩍 넘을 것이다.
전기요금 인상은 제품 가격 인상을 부추겨, 서민 삶을 힘들게 하고 기업의 가격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이러함에도 11차 전기본은 무탄소 전원을 늘려야 한다는 당위만을 얘기할 뿐, 당장 우리 국민과 기업이 받는 영향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문제는 또 있다. 전기 공급의 안정성이다. 11차 전기본대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확대하려면,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기술과 설비가 뒷받침해 줘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위한 관련 기술 수준과 돈이 전력 당국의 생각대로 갖춰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대비 없이 재생에너지 설비만 늘리면 어떻게 될까. 전력 계통 안정성이 크게 떨어져, 정전의 위험에 상시 노출된다. 즉, 내가 쓰고 싶을 때 전기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수시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대체 전기본은 누구를 위해 수립하는가. 전기본은 우리 국민과 기업이 전기를 쓰고 싶을 때, 그것도 전기요금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전력 수급 환경을 만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탄소배출도 없이, 안정적으로 그리고 값싸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답이다. 바로 원자력이다. 그런데도 11차 전기본은 원전 설비 확충을 최대한 억제하는 듯하다. 원전 건설비 절감을 위해 2기씩 짓던 그간의 관행을 깨고 홀수 기 원전 건설을 제안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에너지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다. 이 말과 함께 누구나 전기를 생산해 시장에 팔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대형 공기업 위주의 전력시장 진입 장벽이 낮춰지며, 개인이나 소규모 전력사업자의 재생에너지 전기 생산·판매가 늘어났다. 이들의 이익은 국민이 낸 전기요금으로 충당한다.
그러나 이는 불공정한 처사다. 전기 공급의 자유가 있다면, 전기 소비의 자유도 있어야 한다. 즉, 전기 소비자인 가정과 기업이 어떤 전기를 사용할지 선택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제라도 전기 소비자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이를 이행할 수 있는 기술과 설비를 갖춰나가야 한다. 나는, 지금도 그리고 2038년에도 전기요금 폭탄이나, 정전 걱정 없이 전기를 사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