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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원자력 발전을 하면 필연적으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말한다. 일정 기간 높은 열과 방사능을 배출하기 때문에 밀폐공간에서 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고리1호기가 1978년 상업운전에 들어간 뒤 40여 년간 25기의 원전을 가동해 왔지만, 아직 영구처리시설이 없다는 점이다. 그사이 사용후핵연료는 1만8600t(톤) 이상 쌓였다. 원전 부지내 습식 수조에 보관했지만, 공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원전 부지 안에 임시로 건식 저장시설을 만들기도 했지만, 영구 시설은 될 수 없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등에 따르면 2030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한울(2031년), 고리(2032년) 원전 등이 향후 10년내 저장공간이 포화된다. 원전 내 저장시설 건설을 서두르지 않으면 사용후핵연료를 둘 곳이 없어 원전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우리의 전기 사용에 제약이 생기는 것은 물론, 반도체·철강 등 전기를 많이 쓰는 주요 산업이 타격을 받는다는 의미다. 고준위 방폐장은 최종 완공까지 30년 넘게 걸리는 만큼, 당장 시작해도 2050년 이후에나 설치가 가능하다.
상황이 심각한 만큼 20대 국회에서 관련법안이 발의됐지만, 여야 정쟁 속에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21대 국회에서 다시 부지 선정 절차 및 일정, 유치 지역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3건의 특별법안(국민의힘 김영식·이인선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안)을 발의했지만, 여야는 11차례 논의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저장시설의 용량 등이 쟁점이다. 정부·여당은 설비 용량을 설계수명 이후 ‘계속운전’까지 고려하자는 입장인데, 야당은 설비용량을 원전 수명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당의 주장은 결국 탈(脫)원전과 궤를 같이 한다. 야당안대로 입법되면 기존 원전의 계속 운전과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회 안팎에선 당·정이 ‘일단 입법’을 위해 야당안을 수용할 의지를 보였는데도, 야당이 소극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은 당리당략의 정쟁 꺼리가 아니라, 원전 혜택을 받은 현 세대가 반드시 풀어내야 할 숙제다. 게다가 지금은 특별법 제정의 최적기다. 여야 모두 특별법의 필요성에 공감해 법안을 발의한 데다, 행정부가 강력한 법제화 의지를 보이고 있어서다. 다수의 국민(91.8%, 에너지정보문화재단)도 고준위방폐물 관리시설의 시급성에 동의하고 있다.
1968년생인 정 학회장은 “이번에 특별법 제정이 무산되면 은퇴 전엔 힘들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앞으로 10년 안에 이런 적기를 다시 맞기 힘들 것이라는 설명이다. 오는 5월말 임기가 끝나는 21대 국회는 2월 1일 임시국회 본회의를 연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은 우리 세대가 짊어져야 할 책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책임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겨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