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리뷰
뮤지컬 '비틀쥬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유머 일품
무대기술 압권·영화 재현도 반가워
[송경옥 뮤지컬 프로듀서] 야심차게 디즈니에 입사했다 해고된 사람이 있었다. 기괴한 공포를 미학으로 둔갑시키는 재주가 있던 팀 버튼이다. 잘린 이유는 아이들을 놀라게 할까 봐서. 1988년 히트한 그의 고전 영화 ‘비틀쥬스’(유령수업)가 2019년 4월 브로드웨이에 뮤지컬로 올려져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세계 최초 라이선스로 공연 중이다. 코로나 시국에 라이브를 놓지 않은 한국시장 영향이 있었겠지만, 글로벌 뮤지컬 컴퍼니로 발돋움하고 있는 CJ ENM의 성과 덕도 크다. 이번에 특별히 세종문화회관 시즌 공연으로 공동주최했다.
| 뮤지컬 ‘비틀쥬스’의 한 장면(사진=CJ EN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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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쥬스의 줄무늬(스트라이프)는 역사적으로 ‘악마의 무늬’였다. 오늘날 ‘뽀빠이’나 ‘샤넬’처럼 건강하고 세련된 이미지도 있지만, 어릿광대부터 죄수까지 부정적인 쓰임새도 여전하다. 블랙 앤 화이트의 굵직한 줄무늬로 도배된 비틀쥬스는 ‘정상에서 벗어난’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상태가 심각해 버려진 존재에 가깝다. 98억년 동안 무면허로 ‘저 세상 가이드’ 일을 하는 소속 불명, 정체불명이라고 하면 좀 이해가 되려나. 너무 황당해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상황에 가깝다. 이 신개념 악동이 세상 컴백쇼를 하겠다고 광고판을 내걸었다. 궁금하지 않은가.
롤링스톤(Rolling Stone)지는 이 작품을 끝내주는 놀이기구에 비유했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엽기적 유머와 속도감 때문이었으리라. 무대 전체가 입체카드처럼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 불꽃이 붙고, 멀쩡한 다리가 세 개로 늘어나고, 이마를 열면 뇌가 보이기도 한다. 그뿐인가.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올라오는 머리가 쪼그라진 유령과 초대형 모래 벌레까지 모두 초를 다투는 무대기술의 정점이었다. 기하학적으로 일그러진 시각디자인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 세트를 코믹한 초현실주의로 패러디한 것으로 보였다. 총체적으로 팀 버튼 양식(Burtonesque)에 빙의했다.
노래와 안무도 꽉 차 있었다. 영화에서 들었던 벨라폰테의 ‘데이-오-바나나 보트송’은 그 특유의 빙의 안무가 그대로 재현돼 반가웠다. 복제된 비틀쥬스들이 대거 등장하는 ‘저 아름다운 소리’나 마지막 곡 ‘춤을 춰요’도 흥을 돋웠다. 절정의 순간에 늘 함께했던 카리브해 음악이 개성을 살리고 있었다.
| 2021 뮤지컬 비틀쥬스 공연사진_비틀쥬스(유준상) 외 [제공 CJ EN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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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팀 버튼의 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결국 ‘이타적 사고’ 아닐까 싶다. ‘정상과 비정상’ 혹은 나와 다른 ‘낯설고 이상한’ 존재에 관한 관심과 포용이다. 그것은 유령 혹은 유령 취급받는 인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실은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정상은 없다. 이 세상도 저 세상도 그게 정상인 거다. 리디아 엄마는 죽기 전 ‘망가진 것들이 잘 안 고쳐져도, 서로를 붙들고 잘 살아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아마도 그녀는 모든 걸 알고 있었던 듯하다.
완성도를 위해 개막을 연기했던 제작사의 속사정은 애가 탔겠지만, 공연을 보면서는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틀쥬스 정성화는 제 옷을 입은 듯 찰떡이었으며, 리디아 홍나현과 델리아 전수미를 비롯한 배우들과 모든 스태프는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기술적으로 그만큼 복잡했고 어려워 보였으나 공연 당일의 오프닝은 일체의 실수가 없었다. 출발이 좋았으니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