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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사이클은 장기적인 가격 상승 추세를 뜻합니다. 과거 원유, 가스, 금, 구리, 밀, 옥수수 등 원자재시장에서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원자재 가격이 2배 가까이 상승하자 ‘슈퍼 사이클’이라는 단어를 붙였습니다. 이후에는 조선, 부동산, 반도체 등 단기 공급이 어려운 산업재의 가격이 장기적으로 상승할 때 이 단어를 붙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 산업에서 큰 규모의 장기 호황을 슈퍼 사이클이라고 부릅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슈퍼사이클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반도체에는 중앙처리장치(CPU), D램, 낸드플래시 등 다양한 반도체들이 있지만 이 중 반도체 시장의 호황을 이끌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D램이 가장 주목을 받습니다. 이 때문에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PC,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는 D램 가격이 크게 오르는 시장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이클이 발생하는 이유는 시장의 조절 기능때문입니다. 만약 반도체를 필요로 하는 고객들의 주문은 쏟아지는데 공급이 소화하지 못한다면 반도체가 귀해지니 가격은 올라가겠죠. 반대로 고객사들이 이미 재고를 너무 많이 쌓아놓는 등 반도체 주문이 필요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가격은 내려갈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어느새 다시 공급과 수요가 딱 맞아떨어지게 되고 이 현상이 돌고 돌아 산업 사이클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난 2017년 세계 시장에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찾아왔습니다. 2017년 9월~11월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이 3개월 연속 역대 최고 수준인 90억달러를 넘어서고 국내 반도체 대표주자인 삼성전자는 그 해 반도체 부문에서만 연간 영업이익 35조원 육박하며 24년간 인텔이 가지고 있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마저 빼앗았습니다.
지난 8일 삼성전자의 2020년 전체 영업이익이 35조95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는데 이 만큼의 돈을 2017년에 반도체 부문에서만 벌어드린 것이죠.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17년 연간 영업이익이 13조를 넘어서며 연간 기준 최대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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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반도체의 수요 공급 상황은 현재 어떻게 될까요.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경제’가 한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데이터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데요. 그간 시장에 풀려있는 재고 수준도 소진된 상태고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등 메모리반도체 수요와 5세대 이동통신(5G) 시대가 도래하는 등 D램 주문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반도체 가격도 이에 맞춰 2020년 12월31일 기준 D램 반도체 현물 가격(DDR4 8기가비트 기준) 3.460달러로 12월 1일 2.770달러에서 한 달만에 24.9%나 올랐습니다. 올해도 화상회의, 동영상 스트리밍 등 대용량 데이터를 소모하는 서비스가 확대됨에 따라 구글, MS, 아마존 등 거대 IT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기대돼 지금 같은 가격 상승세는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올해 글로벌 반도체 매출이 올해보다 8.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13.3%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직접적인 수혜를 입는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나봅니다.
◇“호황 이후엔 불황온다”
업계에서는 이 기간에 관련 산업이 고속 성장하는 기간이지만 이후 극심한 조정기가 나타나 마냥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반도체 호황을 누린 2017년에도 이런 걱정 어린 시선이 존재했습니다. 숀 킴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고마웠어 메모리, 이제 멈출 시간(Thanks for the Memory, Time For a Pause)이라는 보고서를 내며 반도체 시장의 공급과잉문제를 지적했는데요.
메모리 반도체는 보통 3~4년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지난 2017년에서 4년이 지난 올해는 슈퍼사이클이 다시 온다하더라도 불황기를 미리 예측해봐야하는 것이죠. 특히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보인 메모리 가격 하락기의 모습이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어서 그 모습을 예측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반도체 업계가 1990년초부터 1996년까지 PC붐과 함께 이뤄진 ‘1차 슈퍼사이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서버·데이터센터 수요 폭증으로 발생한 ‘2차 슈퍼사이클’에는 약 2년 정도 하락하고 매출 감소폭도 최대 41%정도였습니다.하지만 이번 2018년 9월 8.19달러의 가격 정점기를 기준으로 2019년 10월까지 1년만에 D램 가격 65%하락, 매출 감소폭 59%로 더욱 커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5G 모바일 보급 확산으로 반도체 수요 증가, 코로나19 비대면 상황 등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호황 이후에 불황까지 예상해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