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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속상" 들끓는 美 비자 걱정…'아메리칸 드림' 막히나

김정남 기자I 2020.06.24 00:30:00

트럼프, 취업비자 발급 중단 초강경 정책
주재원 직접 영향권…"경영 불확실성 커져"
H1B 비자 제한시 대학교수·유학생 등 타격
美 이주 준비 중인 이들, 비자 걱정 토로
"외국인 많다고 실업률 높아지는 것 아냐"
공화당 내부도 우려…"美 경제 도움 안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의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주지사들과 자영업 영업 재개를 주제로 원탁회의를 하던 중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김정남 정다슬 기자] 미국 정부의 초강경 비자 제한 조치가 나온 23일(한국시간 기준). 미국 이주와 관련한 한 인터넷 카페는 온종일 비자 걱정으로 들끓었다. 주한미국대사관의 비자 업무 중단이 길어지는 와중에 일부 취업비자 발급 중단 소식까지 전해진 탓이다.

주재원 비자인 L-1을 준비 중인 A씨는 “너무 속상하다”는 글을 올렸다. 미국에 새로 지사를 내 사무실 임대 후 현지 직원들까지 뽑은 기업인인데, 정작 회사 대표가 비자를 받지 못해 미국을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A씨는 “(대사관에서 비자 인터뷰를 재개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L-1 비자 자체를 막는다고 하니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비자를 받지 못하면 정상적인 미국 입국은 불가능해진다.

미국의 한 대학으로 임용된 또다른 대학 교수 B씨는 “(전문직 근로자에 대한 H-1B 비자가 이번달 만료돼 가을 학기 출근 전) 한국에 잠시 들어와 다시 비자 신청을 하려 했다”며 “H-1B는 예외없이 모두 막히는 것이냐”며 혼란스러워 했다.

정기적으로 주재원 보내 미국 사업을 하는 대기업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 탓에 올해 상반기부터 해외 출장 혹은 파견은 최대한 줄여 왔다”면서도 “앞으로도 미국 출입국이 어려워질 경우 미국 사업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인 일자리 보호를 이유로 연말까지 일부 취업비자 발급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 일하려는 한국인 혹은 미국 현지 사업을 하는 한국기업 등은 커지는 불확실성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비자 자체를 막는다니…너무 막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전문직 근로자에 대한 H-1B와 그들의 배우자에 대한 H-4 비자, 해외에서 미국으로 주재원을 보낼 때 사용하는 L-1 비자, 비농업 분야 임시 근로자에 대한 H-2B 비자, 문화교류 비자인 J-1 가운데 특정 부분 등 5개 종류의 비자를 새로 발급하지 않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명서에서 “올해 2월~4월 사이 H-2B 비자와 관련해서 1700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며 “H-1B, L-1 비자의 경우 2000만명에 달하는 미국인이 직장을 잃었다”며 “코로나19로 미국 전체 실업률이 4배 넘게 증가한 상황에서 이같은 취업비자는 미국 고용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번 조치를 “미국의 첫 번째 회복”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미국인들에게 약 50만개 일자리가 되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이번 조치는 올해 12월 31일에 만료되며, 필요한 경우 연장될 수 있다. 시행 이후 60일마다 국토부 장관과 노동부 장관이 추가적인 조치를 내릴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미 비자를 발급받은 이들이 미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발효일 전 유효한 여행 서류(미국 입국 서류, 항공권, 사전 여행허가서) 등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함께 H-1B 비자의 발급 중단 이후 발급 한도를 제한하겠다는 점 역시 시사했다. 정보기술(IT) 기술직 등이 받는 H-1B 비자는 2000년 이후 한국인들의 주요 이민 통로 중 하나였다. 현재 미국은 H-1B의 연간 발행 한도를 학사 소지자 6만5000개, 미국 내 고등 교육기관 석사 이상 소지자 2만개로 각각 설정해 무작위 추첨을 하고 있는데, 이를 연봉이 높은 순서로 할당하겠다는 방침이다. 최상위 고연봉을 받는 엘리트만 H-1B 비자를 받을 수 있게 되면, 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비자 제한 조치가 기업의 인력 운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L-1 혹은 H-1B를 통해 자국 직원을 파견하거나 현지 직원을 채용하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번 5개 외에 다른 비이민비자까지 발급 중단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이주를 준비 중인 이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이유다.

◇공화당 내 親트럼프 의원마저 우려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 경제계는 일제히 반발했다. 미국정책재단의 스튜어트 앤더슨 국장은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들어올수록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며 “이들을 막으면 실업률을 떨어뜨릴 수 있는 생각 역시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64%는 이민자들이 주로 미국인들이 원하지 않는 일자리를 채우고 있다고 답했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등 미국의 IT 공룡 기업들이 속한 정보기술산업협회는 “외국인 기술진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미국인들이 원격으로 근무할 수 있게 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 내부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친(親)트럼프 인사로 알려진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과 존 코닌 상원의원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불행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미국 경제의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두렵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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