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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다른 사람이 비용을 지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잘 따져보면 공짜라기보다 비용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로 인한 혜택은 공짜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납세자나 미래 세대에게 전가되는 비용이다. 이처럼 어떤 선택이나 희소한 자원의 투입도 비용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다만 우리는 그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지식과 기술의 활용을 통해 효율적인 생산방법을 적용하고, 투입되는 자원의 생산성을 높여서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는 무상급식,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택과 같은 일련의 ‘무상(無償)’ 시리즈가 난무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관점에서 보면 모두 잘못된 표현이다. 그와 같은 ‘무상’ 시리즈가 현실화되려면 우리 사회의 누군가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경향이 컸다. 지자체와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했고, 자영업자·소상공인·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는 50조원, 100조원 규모의 대책도 발표됐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인지라 시장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부족한 것보다 과도한 것이 더 낫다는 찬성론도 많았다. 지원받는 가계나 기업은 공짜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납세자와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다.
코로나19는 인체에 침입한 바이러스지만 좀비기업은 경제체제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다.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할 좀비기업의 양산은 건전한 기업의 생존까지도 위협하게 된다. 특정 업종 전체의 매출액이 50∼90%씩 감소하는데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에 힘입어 시장에서 퇴출되는 기업이 한 개도 없다면 모든 기업이 다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경제의 비효율성이 높아지고 생산성도 떨어지게 된다. 물론 좀비기업의 구조조정도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며,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구조조정으로 인한 실업문제는 별도의 고용안전망 구축을 통해 대응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는 기존의 경제정책 방향을 바꾸는 계기로 활용할 수도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나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주52시간 근무제는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시행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부동산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도 가격하락기에 시행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다. 경제여건이 판이하게 달라진 상황에서 과거에 발표한 정책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 정책의 방향전환이나 속도 조절을 통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적 어법은 ‘무상’이니 ‘공짜’니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크다. 경제적 어법은 그런 것이 진짜로 공짜가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총선 이전에는 정치적 어법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총선 이후에는 경제적 어법에 좀 더 힘을 실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