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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국제통’ 금융지주 수장들이 발로 뛰자 해외 큰 손들이 움직이고 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이 대표적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징적인 업무로 여겨졌던 금융지주 회장의 해외 기업설명회(IR)가 점차 보편화하면서다. 이들이 장기투자 전문 초대형 자산운용사와 연기금을 주로 공 들이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굵직한 주주들과 신뢰 관계는 요즘처럼 나라 안팎의 경기 불황기 때 빛을 발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템플턴, 최근 KB금융 주식 추가 매수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프랭클린 템플턴펀드를 운용하는 미국계 프랭클린 리소시스는 지난 2일 KB금융의 주식 172만8524주를 매수했다. 템플턴의 총 주식 수는 2095만3613주(지분율 5.01%)에서 2268만2137주(지분율 5.42%)로 늘었다. 템플턴은 지난 4월16일 KB금융의 주식을 5.01% 사들이며 단박에 국민연금공단에 이은 2대 주주에 올랐고, 한 달 반이 지난 후 추가 매수에 나섰다.
템플턴이 KB금융에 ‘통 큰’ 투자를 한 건 사연이 있다. 두 달 전인 지난 4월 초 윤 회장이 호주에서 직접 템플턴 인사들과 미팅을 했던 게 계기가 됐다. 당시 KB금융의 주가는 4만원 초반대까지 떨어졌다. 연 최저점은 3월28일 주당 4만750원. 연초 4만원 중후반대에서 하향세를 탔던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율이 올해 들어 가장 낮은 65.95%까지 내렸던 것도 그 즈음(3월26일)이다. 더 길게 보면 KB금융 주가는 2018년 1월12일 6만9200원을 찍은 이후 계속 떨어졌다. 현재 주가는 정점 대비 주당 2만원 이상 저평가돼 있는 셈이다. 윤 회장이 지난해 7월부터 4년 만에 해외 IR에 나서기 시작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KB금융의 한 인사는 “템플턴 등의 신규 투자를 이끌어낸 것은 윤 회장의 유치전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봤다. 당국의 가계대출 규제와 한국 경제의 둔화 양상 등으로 올해 실적 전망이 썩 좋지 않은 와중에도 외국인 주주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건 수장이 직접 뛰고있는 게 한 몫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회장은 영어에도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조, 하반기 연기금 발달 유럽서 IR
KB금융과 리딩뱅크를 다투는 신한금융도 ‘우군’이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다. 블랙록은 올해 3월말 기준 6조5200억달러(약 7778조원) 규모의 천문학적인 자산을 굴리고 있다. 블랙록의 투자 자체가 주가에 호재로 여겨질 정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주요 주주이기도 하다.
블랙록은 현재 신한지주 주식을 2906만3012주(6.13%)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4일 474만2289주를 추가 매수하며 BNP파리바를 제치고 2대 주주에 올랐다. 주목할 건 올해 들어 국내 금융주 주가가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음에도 블랙록이 매도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신한금융 안팎에 따르면 블랙록의 장기투자 이면에는 조 회장의 역할론이 작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조 회장은 IR을 나갈 때마다 해외 곳곳에 있는 블랙록 관계자들과 미팅을 하며 미래 전략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달 홍콩과 호주를 찾았을 때도 블랙록 등 기관투자자들을 만났다. 조 회장은 신한은행 뉴욕지점장,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대표 등을 역임한 경험이 있어 글로벌 투자자들과 접촉하는데 익숙하다. 신한금융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조 회장이 해외 IR 때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를 유독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역시 장기투자자를 유치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윤 회장과 조 회장은 올해 하반기에는 나란히 연기금이 발달한 유럽으로 해외 IR을 계획하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은행주 주가가 10년 전인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일 정도로 낮은 건 그만큼 저평가돼 있다는 것”이라며 “해외 큰 손들의 매수를 계기로 주가 반등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