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최근 이런 방침을 밝히며 ‘전세 대출 규제’ 논란도 잠잠해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는 여론 반발에 따른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초 전세 보증에 소득 제한을 신설하려 했던 취지를 고려하면 단순 민심 달래기 차원을 넘어서 섬세한 정책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먼저 정부가 전세 보증에 소득 제한을 도입하려 했던 애초 취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①소득제한 왜 하려 했나
현재 시중에서 이용할 수 있는 전세 자금 대출 상품은 크게 두 종류다. 먼저 국민주택채권 매각·청약저축 등을 재원으로 조성한 정부 기금인 주택도시기금(옛 국민주택기금)이 자체 돈으로 중·저소득층에게 전세 보증금을 직접 빌려주는 ‘버팀목 전세 자금’이 있다. 또 은행 등 민간 금융회사가 한국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SGI서울보증 등의 지급 보증을 받아 금융회사 자금으로 대출하는 상품이 있다.
금융 당국이 소득 제한을 신설하려 했던 것은 후자, 그중에서도 준정부기관인 주택금융공사의 전세 자금 보증이다. 금융위원회는 앞서 지난 4월 ‘서민·실수요자 주거 안정을 위한 금융 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오는 10월부터 공사가 취급하는 전세 보증을 ‘서민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보유한 집이 여러 채인 다주택자와 부부 합산 소득이 연 7000만원을 넘는 가구는 주택금융공사의 전세 보증 이용을 제한하기로 했다. 결혼 5년 이내인 맞벌이 신혼부부는 연 소득 8500만원, 자녀가 1명인 1자녀 가구는 연 8000만원, 2자녀 가구는 연 9000만원, 3자녀 가구는 연 1억원 이하여야 공사 보증을 이용할 수 있다. 지금은 보유 주택 수나 소득과 관계없이 누구나 보증 상품을 이용할 수 있지만 앞으로 다주택자와 고소득자를 걸러내겠다는 것이다. 이는 고소득층 지원을 줄여 아낀 돈을 저소득층 지원에 쓰기 위해서다. 금융위는 “고소득자의 전세 보증 이용을 제한해 취약 계층의 전세 보증 지원을 위한 연 1조8000억원 규모 재원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방침이 뒤늦게 여론 반대에 부닥친 것은 지난달 28일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한 가계 부채 대책’에 재등장하면서다. 금융위는 대책을 통해 “전세 대출이 집값 상승이나 주택 구매 자금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전세 보증 요건을 중심으로 전세 자금 대출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취약 계층 지원 확대’라는 원래 정책 취지가 ‘부동산 투기 수요 억제’로 탈바꿈한 것이다.
서울 집값이 급등하자 그 화살을 전세 사는 세입자에게 돌린 정부 대응이 민심에 불을 댕겼다. 민간 경제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박탈감이 큰 세입자들에게 정부가 ‘투기 수요’라는 꼬리표를 붙이자 불만이 폭발한 것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②왜 연 소득 7000만원인가
“맞벌이로 연간 7000만원 버는 사람을 고소득자라고 할 수 있느냐”, “전세대출 막으면 계속 월세 살란 거냐”라는 것이 정부의 가계 부채 대책 발표 후 제기된 불만의 주요 내용이다.
여기엔 몇 가지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 우선 정부는 통상 다른 정책에도 연 소득 7000만원을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가리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세입자가 낸 월세액의 10%(75만원 한도)를 소득세에서 감면해주는 월세 세액 공제도 연봉 7000만원 이하 근로자가 적용 대상이다. 올해부터 신설한 도서 및 공연비 지출액 소득 공제, 내년부터 시행하는 산후 조리원 의료비 세액 공제 등도 연봉 7000만원 이하 근로 소득자여야 지원받을 수 있다. 금융위가 주택금융공사 전세 보증 대상을 부부 합산 연 소득 7000만원 이하로 정한 것도 공사가 취급하는 저금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보금자리론’ 지원 기준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연 소득 7000만원을 정책 지원의 기준으로 삼는 데 명확한 이론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중산층 정의(중위소득의 50~150%)를 참고해 최소한 소득이 중간 정도 되는 사람은 정책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중위소득의 150%까지를 지원 대상으로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위소득은 소득 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으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올해 중위소득은 4인 가구 기준 월 451만9000원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중위소득의 1.5배인 월 소득 677만8500원(연 8134만2000원) 아래 가구를 지원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국세청 과세 자료를 보면 부부 합산 소득이 연 7000만원을 넘는 가구가 대체로 중산층 이상의 ‘고소득층’에 속하는 것도 맞는다. 일반인 체감과는 많이 다른 것이다.
본지가 국세청 ‘국세통계연보’를 분석해 봤더니 연봉 3000만원을 초과하는 근로 소득자는 2016년 기준 총 716만5514명으로 전체 근로 소득자(1774만98명) 중 소득 상위 40%에 해당했다. 맞벌이한다고 가정할 때 부부의 벌이가 연 7000만원을 초과할 가능성이 큰 연 소득 4000만원 초과자의 경우 근로 소득세와 종합 소득세를 신고한 국내 전체 소득 신고자(중복 포함 2335만8136명) 중 소득 상위 26.1%(608만6895명)에 속했다.
주택금융공사의 전세 보증 이용 대상을 부부 합산 연 소득 7000만원 이하로 제한할 경우 소득 상위 20~30%가량에 위치한 계층이 지원 자격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③고소득자 전세대출 모두 막히나
이런 중·고소득 계층에 공사의 전세 보증 이용을 제한하면 전세 대출을 아예 받을 수 없다는 것도 과장된 말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와 SGI서울보증도 전세 보증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택금융공사의 전세 보증 상품이 대출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고 집주인 통지나 동의 절차가 필요치 않은 등 이용이 간편한 장점이 있다. 전세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빌려주는 사실상의 채권자인데,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서울보증보험 보증 상품은 은행이 세입자 채권에 우선 변제권을 갖는 질권을 설정하거나 채권을 넘겨받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하지만 보증기관별 상품 성격이 달라 대출 금리 등 장·단점을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일례로 주택금융공사의 전세 보증은 대출자가 부담하는 보증료율이 낮지만 개인 상환 능력을 심사해 보증 한도를 결정하는 만큼 대출 한도액도 3개사 중 가장 적다. 반면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 보증을 이용하면 대출 금리가 약간 올라가는 대신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을 위험까지 함께 보장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서울보증의 경우 대출 금리가 주택금융공사 상품보다 0.5%포인트 정도 높으나 대출 가능액이 가장 많고 이자에 보증료를 포함한 구조여서 단순 금리만 보고 상품 간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고 각 기관은 강조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택도시보증공사는 국토교통부 산하의 준시장형 공기업이므로 정부가 가계 부채 대책을 만들면서 주택금융공사 전세 보증에 소득 기준을 신설하면 부처 간 협의를 거쳐 같은 기준을 적용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서울보증은 예금보험공사가 지분 90% 이상을 보유한 최대 주주이지만 민영 기업이기 때문에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④다 지원하면 안 되나
일각에서는 주택금융공사가 고소득층에게 전세 보증을 지원하는 것이 왜 문제냐고 의문을 품는다. 공사도 전세 보증을 취급하면서 대출자에게 보증료를 받는 만큼 수익이 발생하는 사업이라면 굳이 이용 대상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보증 지원을 확대해 보증료 수입을 늘어나면 이를 저소득층 지원에 쓸 수도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공사는 전세 보증이 마진은커녕 손실이 나는 사업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주택금융공사의 ‘2018년도 자금 수입 및 지출 계획’을 보면 올해 공사의 보증료 수입액은 1330억원, 전세 보증 등을 이용한 대출자가 원리금을 갚지 않아 공사가 금융회사에 돈을 대신 갚고 구상권을 활용해 회수한 수입액이 1214억원이다. 반면 공사가 은행 등에 대출금을 대위 변제한 지출액은 2805억원에 달한다. 전세 보증 등 신용 보증 사업으로 한 해 260억원가량의 손실을 떠안는 셈이다.
이 손실액이 주로 빚 상환 능력이 낮은 저소득층 지원 때문에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공사의 보증 상품 주 이용자가 이미 중간 소득층 이상이라서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실이 주택금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사 보증을 받고 은행이 자체 재원으로 공급한 전세 자금 대출액 총 14조1299억원 중 82%(11조5350억원)는 대출자 개인 소득이 연 3000만원을 넘었다. 연 소득 1억원을 넘는 사람(소득 미입력자 포함)에게 지원한 대출액도 8384억원에 달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이런 추세가 더 가속해 전체 공사 보증을 통한 전세 자금 대출액 9조5653억원 중 연 소득 1억원 초과자 대출액이 5246억원으로 연간 기준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전세 대출 보증액을 떼이는 것은 주로 사기 대출 때문”이라며 “공사가 얻는 이익이 사실상 마이너스(-)인데도 매년 은행·신협·농협·수협·새마을금고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5000억~6000억원 정도 출연금을 받는 덕분에 그나마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가 전세 보증 지원 등에 활용하는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은 정부와 금융기관 출연금 등을 주 수입원으로 하는데, 이 같은 재정이나 민간 자금 지원 등으로 손실을 메꾸는 구조라는 것이다.
보증 지원을 대폭 늘리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주택금융공사법 상 공사가 관리하는 기금의 신용 보증액은 정부·금융기관 출연금(기본 재산)의 30배를 넘을 수 없다.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의 개인 신용 보증 잔액은 작년 말 현재 68조7294억원으로 기본 재산(약 6조원)의 11배 수준이다. 공사 관계자는 “법상 기본 재산의 최대 30배까지 보증을 늘릴 수 있지만, 갑작스러운 경제 환경 변화 등에 대비해 보증액을 15배 범위 안에서 운영하고 있다”며 “손실 나는 사업에 신용 보증액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한정된 보증 재원을 어느 계층 지원에 사용해야 하는지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주택금융공사의 전세 보증을 소득 심사 없이 지원할 경우 취약 계층이 고소득층에 밀려 혜택을 박탈당하거나 연 소득이 1억원이 넘는 고소득자까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송인호 연구위원이 지난해 내놓은 ‘월세 비중의 확대에 대응한 주택 임대 정책 방향’ 보고서를 보면 월세 거주자의 전체 소득에서 주거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RIR)은 2016년 기준 32.1%로 전세(22%)보다 10.1%포인트 높다. 주로 소득이 적은 청년층과 고령층이 월셋집에 거주한다. 월세 사는 저소득층에게 전세, 자가로 올라가는 ‘주거 사다리’를 제공하기 위해 한정된 재원을 고소득층 혜택을 줄이고 취약 계층 보증 지원에 더 쓰겠다는 금융 당국의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⑤은행은 왜 전세대출을 직접 안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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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논란은 애당초 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이 공공기관 보증 없이 직접 전세 자금 대출을 공급했다면 불거지지 않았을 일이다.
사실 우리은행 등은 과거 ‘우리홈론’ 등 보증서가 필요 없는 자체 전세 대출 상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민간 상품은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 사실상 폐기됐다. 수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당시에는 집주인 승낙을 받는 등의 절차가 생소했고 그래서 이용자도 대출 방법과 요건이 까다롭다고 여겨 이용을 꺼렸기 때문이다.
반면 과거보다 전세금이 많이 올라 금융기관 대출을 끼고 전셋집을 구하는 것이 일반화한 지금은 자체 전세 대출 상품을 출시해볼 만하다고 은행 등도 판단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법리적인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전세금 자체가 안전한 자금인 만큼 은행이 전세 대출을 직접 취급하는 것도 못 하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문제는 이미 시중은행 전세 대출의 대다수가 보증기관 보증을 끼고 공급되는 만큼 은행이 직접 대출을 취급할 유인이 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은행 관계자도 “기존 보증 상품이 있는데 굳이 은행이 직접 대출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귀띔했다.
⑥앞으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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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무주택자의 경우 지금처럼 주택금융공사의 전세 보증 이용을 계속 허용키로 하고 집을 한 채 가진 1주택 보유자의 경우 추가 논의를 거쳐 소득 기준을 신설할지 결정할 계획이다. 최종안은 이르면 이달 중 발표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 등에 같은 소득 기준을 적용할지도 함께 결정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1주택자에는 당초 발표안과 같은 소득 제한을 둘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다만 이때도 통근이나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내 집 두고 다른 집에 전세 사는 ‘무늬만 세입자’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있다.
한 경제 부처 관계자는 “공공의 재원을 쓰는 주택금융공사 전세 자금 보증의 경우 고소득자의 이용을 아예 막을 것이 아니라 보증료를 더 받아 기금 손실을 보전하고 남는 재원은 저소득층 지원에 쓰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임대료 인상률 상한(연 5%)을 시장 이자율 수준에 맞춰 낮추고 이를 지키며 신규 계약 또는 재계약하는 집에만 보증 지원을 하는 것도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