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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맞선 인생 1막 ‘도전’
성 대표의 인생은 롤러코스터처럼 유난히 우여곡절이 많았다. 굴곡과 도전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 자신과 가족들을 끊임없이 위협한 병마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내 최고의 산업용 컴퓨터 전문업체를 일궈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유별났다. 중학교 1학년 때 라디오를 처음 접한 그는 그 매력에 푹 빠졌다. 틈만 나면 라디오를 부수고 만들고 노는 탓에 성적은 최하위권을 맴돌았고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꿀 지경이었다. 뒤늦게 진학 고민을 하다가 라디오와 같은 것을 더 연구할 수 있는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되기로 했다. 전파상이 꿈은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에 몰두했다.
연세대 전자공학과에 당당히 입학했지만 이번엔 암벽등반에 빠졌다. 졸업이 불투명할 정도로 학점이 엉망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졸업한 이후에도 남다른 사회생활이었다. 그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모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회사가 작더라도 개발 업무를 하고 한 달만에 그만뒀다. 군에 납품하는 장비를 만드는 곳에서 3년 반가량 일에 열중하던 그는 애플 컴퓨터를 접하면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여의도에 5평 상가를 세 업체가 나눠 쓰는 공간을 얻어 컴퓨터를 조립해 팔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1983년말 컴퓨터 열풍이 불었고, 대전 연구단지 쪽에서 시험장비 개발 의뢰가 들어왔다. 제어장비 개발에 성공하면서 그는 말 그대로 ‘돈방석’에 앉았다. 한 대를 납품하면 1000만원이 남을 정도. 당시 그가 직장에서 나올 때 월급이 38만원이던 시절이었고 여의도 아파트가 한 평에 150만원 했던 때다. 두 달에 한대 정도를 팔았다.
장밋빛 꿈을 꾸던 순간도 잠시였다. 당시 2살 난 큰아들이 백혈병에 걸린 것. 두 달에 1000만원씩 벌었는데, 이번에는 2주일에 1000만원씩 나갔다. 그동안 벌어둔 돈으로 샀던 여의도 아파트도 팔았다. 청천벽력은 또 있었다. 병간호에 무리했던 아내가 폐결핵에 걸렸다. 빚은 늘어갔지만 다행히 아들과 아내의 증상은 호전됐다. 한시름 놓을 때쯤 그에게 위암이 찾아왔다. 당시 그의 나이 불과 서른셋이었다. 말 그대로 온 가족이 ‘사투’를 벌인 셈이다. 병원비 부담에 가정도, 사업도 풍비박산 위기에 몰렸지만 그와 가족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고 결국 1991년 완벽하게 병을 극복했다. 여의시스템이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오른 것도 이때부터다. 성 대표는 “사업에 어려움이 생길 때면 ‘죽음도 이겨냈는데 이 정도도 못 견딜까’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게 되더라”며 당시의 고난이 결과적으로는 도움을 준 셈이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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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시련 뒤에 그의 인생은 더욱 단단해졌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경영위기가 찾아온 것. 높은 인건비와 심각한 노사분규를 피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국내 업체들이 속출했다. 여의시스템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출은 줄고 적자는 쌓이는 상황에서 임원들은 그에게 ‘직원 30% 감축’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구조조정 대신 ‘투명경영’과 ‘사업부·팀별 경쟁체제’를 선택했다. “당시 시스템을 바꿔서 기업 경쟁력을 높이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회사의 경영상태를 사원 모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대신 회사 실적과 사원 인센티브를 연계해서 사원 개개인과 팀별 성과에 맞춘 철저한 차등 성과급 제도를 시행했죠.” 덕분에 당시 국내 업계를 석권하던 1위 업체가 상장폐지되며 몰락의 길을 걷는 동안 여의시스템은 이후 8년간 순이익이 연평균 50%씩 성장했다. 이제는 연매출 200억원 이상을 올리는 탄탄한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삶이 그렇듯 개인적인 굴곡도 계속됐다. 어릴 적 백혈병을 앓았던 큰아들의 대입과 둘째 아들의 방황이 그것이다. 중병을 앓은 탓에 큰 아들은 다른 사람보다 배우는 속도나 사회적응이 더뎠다. 큰아들이 고등학생 때에는 개인교사를 자처, 새벽 3시에 일어나 같이 공부한 끝에 대학을 보냈다. 둘째 아들은 큰아들에 쏠린 관심 때문이었을까 사춘기가 유별났다. 온전히 고등학교를 마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방황했었지만 각별한 애정을 쏟아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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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의 연속, 전쟁 같았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웃을 여유가 생긴 지금 그가 들고 있는 책은 ‘몰입’(Flow)이다. 그가 말하는 몰입은 집중력, 간절함을 뛰어넘는 무아지경의 그 어디쯤인 듯하다. “몰입은 조건이 좋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속에서도 열정과 도전 정신을 지닌 사람들은 난관에 굴복하지 않고 그 상황을 통제가 가능한 경험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역경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고, 스스로 목적성을 찾아가고 적극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만이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되짚어봤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에너지는 독서에서 왔다고 믿고 있다. “군 복무 시절에 쓸 돈이 없어서 정식휴가 외에는 외출이나 외박도 제대로 못했는데 군 월급을 모아 문고판 책을 사서 봤어요. 2년 7개월 동안에도 문학, 자연과학, 천문학, 역사소설, 무협지, 시집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1년에 평균 100여 권 넘게 읽었습니다. 그때 접한 책들은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양식이 되고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가는데 큰힘이 되고 있죠.”
그는 자신의 경험을 모아 ‘도전’, ‘열정’이란 제목으로 각각 책을 내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한 번 더 책을 쓰고 싶은데, 그 마지막은 ‘사랑’이 될 거예요. 큰 경험 이후에 주어진 시간은 모두 덤이라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아왔고, 살아 있는 자에게 사랑은 의무라고 생각하거든요. ”
“책을 읽는 습관은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세계적인 골프선수는 똑같은 스윙을 하루에 천 번이상 한다고 하잖아요. 운동선수와 같은 프로의 세계에서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답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책을 읽는 습관을 몸에 익혀보세요.” 그가 직원들에게 늘 당부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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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기 회장은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건고와 연세대를 졸업했다. 부수고 만들고 조립하는 취미를 살려 전자공학과를 택했다. ㈜휴니드테크놀러지스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다 1983년 여의도에 여의마이컴이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1991년 법인화를 거쳐 현재 여의시스템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이노비즈협회 6대 회장을 거쳐 올해 8대 회장을 다시 맡고 있다. 연세대 전자공학과 선후배로 조직된 무악 산우회 회장을 맡아 암벽등반을 자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