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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적절한 타이밍에 누군가를 화들짝 놀라게 하는 쾌감이 있다. 다만 육두문자는 감수해야 한다.” 연기에 관심이 많던 한승길 롯데월드 툼오브호러 점장은 2009년 ‘귀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가 최근 점장자리에 올랐다. 경험을 쌓기 위해 시작한 일이 업이 된 셈이다. 7년째 공포에 빠져 산다는 그는 일주일에 서너번 공포영화를 꺼내보고 어떻게 체험객을 제대로 놀라게 해줄까를 365일 연구 중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원정까지 안 가 본 공포체험장이 없을 정도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 어드벤처 내 툼오브호러는 서양귀신의 집합소. 유명 공포영화에서 봤던 ‘그때 그 분위기’가 공포감을 조성한다. 유령이나 좀비·미라·뱀파이어·마녀 등 살벌한 악령이 등장하는데, 우리의 토속귀신보다 덜 무서울 거란 지레짐작은 오산이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기는 기본, 코피를 흘리거나 바지에 실례하는 이도 더러 있다. 한 점장은 “무서우면 근육이 긴장하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데 수위가 심한 체험객이 가끔 있다”며 “지켜보다 뭔가 이상증세를 보이면 즉각 응급상황에 돌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포는 뭐니 뭐니 해도 ‘타이밍’이다. 귀신이 손님에게 발각되면 긴장은 풀리게 마련. 오랜기간 실전에서 실패를 맛본 숙달된 경력자만이 감지할 수 있는 노하우란다. ‘왜 이렇게 캄캄해’ ‘야 진짜같이 잘 만들었네’라고 방심하는 순간, 예기치 못한 곳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유령에 기겁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한 점장의 설명. ‘공포’는 모두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단다. 한 점장은 “체험객은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귀신은 그렇지 않다. 어두운 곳에 10~15분만 있으면 뭔가 보이지 않느냐”며 “게다가 귀신통로가 따로 있어 안전거리만 확보되면 적절한 타이밍을 노릴 수 있다”고 귀띔했다. 대부분 무서워서 괴성을 지르거나 허둥대는데 이때 발소리에 집중하면 놀라게 하는 건 일도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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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역은 대부분 연기과 알바생이 한다. 가끔 역할에 빠져 즉흥연기를 선보이기도 하는데 자제시키는 편이다. “안전상 손을 대면 안 된다. 여성이나 아이일 경우 오해의 소지도 있고 면접 때 야맹증 확인은 필수다.” 물론 돌발 체험객에 대비해 기본 교육과 훈련도 필요하다. 이런 체험객에겐 고무소품으로 툭 건드리거나 발을 거는 수준에 그친다. “시시해할 것 같지만 긴장한 탓에 미세한 소리와 움직임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게 돼 있다.”
공중에 매달린 해골, 벌떡 일어나는 시체의 조형물 등은 외국서 구입하거나 자체 제작한다. 2000만원대 고가부터 적게는 100만원 이하 소품까지 천차만별. 재방문객을 위해 1년에 한번꼴로 내부를 재단장하거나 멘트 등을 수정한다. 올해는 약·강심장으로 나눠 공포수위를 조절, 놀란 표정을 남길 수 있는 포토 장치도 설치했다. “보는 것보다 접촉하고 듣는 공포가 더 크다. 바람을 일으켜 피부를 자극하거나 천둥·비명·방망이질 소리 등을 혼합해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수천개의 소리를 듣고 무서운 것을 골라내는 것도 내 일이다.”
체험객은 대개 3가지 유형으로 압축된단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만 지르는 유형,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귀신을 찾는 유형, 끝까지 무표정한 유형. 주로 귀신이 공략하는 대상은 세 번째 유형. 카메라로 지켜보다 반응 없는 손님을 집중공격한다고. “욕하는 손님도 많다. 이건 양호한 편이다. 뒤통수를 치거나 여자친구를 내팽개치고 뛰쳐나오는 남자도 봤다.”
청소년층이 성인보다 많고 가족보다는 커플이 많이 찾는다. 계절별로는 아무래도 여름에 겨울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공포를 느끼면 서늘하고 으스스한 데다 소름까지 돋는데 어느 정도 몸에 각인된 부분이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냉방 탓도 있고.” 공포체험관에서 한 점장은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 “지금은 7~10분 코스를 걸으며 체험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앞으로는 후각 효과를 넣는다거나 관 체험, 귀신쇼 같은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이색공포를 만들고 싶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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