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승형 산업부장]정치권과 재계에서 이른바 ‘경제민주화’ 논쟁이 한창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치인들의 입에서는 ‘동반성장’과 ‘상생’이란 단어가 오르내린다.
나아가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순환출자 금지, 부자 증세 등 대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각종 방안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통령 선거가 불과 6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제 ‘재벌 개혁’은 피할 수 없는 화두가 됐다.
그동안 대기업이 독식해온 경제 생태계 구조를 바꿔 상대적으로 소외된 경제적 약자들을 배려하겠다는 정치권의 의지는 일견 옳다. 이미 우리 사회는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갈등과 분열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황이다. 1%대 99%의 문제로 커져 버린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정치권의 이같은 움직임에 재계의 방어 또한 적극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한 재계에서는 경제민주화를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의 개념에서만 접근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자칫 재벌과 그 오너들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우려한 탓이다.
그런데 정작 정치권과 재계의 경제민주화 논쟁을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들의 시선은 차갑다. 이 논쟁이 끝을 맺더라도 얻을 것은 별로 없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체감 온도가 영하에 가까운 것은 당연하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도 사회적, 경제적 약자에 대한 냉정한 ‘공격’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이 지난 4일 쌍용자동차 해고자와 정직자 57명에게 3억4300만원의 산재보험 구상금을 청구한 것이 그 예다. 2009년 파업 당시 노사 간 대치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회사 직원과 경비 용역업체 직원에게 지급한 산재보험금을 대신 내라는 것이다. 공단 측은 ‘법’을 내세워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하지만 수십 년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돼 생계 유지도 어려운 근로자들에게는 ‘두번 죽으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대법관 후보에 오른 인물들의 면면 또한 국민들을 경제민주화에 대한 기대에서 멀어지게 한다. 민주통합당에 따르면 한 후보자는 2009년 3월 태안 기름 유출 사고 재판에서 삼성중공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56억원으로 제한했다. 태안 주민 1명당 5만원꼴의 손해배상액이다.
다른 후보자는 2009년 8월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 발행 파기 환송심에서 삼성측에 우호적인 판결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또다른 후보자는 한진중공업 파업 당시 크레인 농성을 벌이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에게 ‘퇴거시까지 하루 100만원씩 지급하라’고 간접강제결정을 내렸다.
이쯤되면 ‘친재벌 대법관 시대’가 열릴 것이란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시대는 경제민주화를 떠드는 데 법조계는 거꾸로 가는 모양새이니 어느 국민이 그 진정성을 믿으랴.
경제민주화란 거대 담론의 늪에서 내가 옳으니, 너가 그르니를 따지기 전에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여전히 시궁창같은 이 현실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순리다. 말보다 행동이 절실한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