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관장 전영우)이 전시 40주년 기념 ‘사군자 대전’을 오는 15~29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마련한다. 1966년 개관 후 71년 겸재 정선 작품으로 첫 전시를 마련한 간송미술관은 지난 40년 동안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씩 보름간 전시주제별 소장품을 일반에게 무료로 공개해왔다. 이번 80번째 전시는 국내 사군자 전시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세종대왕의 현손인 탄은 이정(1554~1626)부터 옥봉 스님(1913~2010)에 이르는 63명의 그림 108점이 걸린다. 임진왜란(1592) 이후의 작품들이 총망라됐다.
이정의 ‘우죽(雨竹)’ |
“문사 배출이 본격화된 고려시대부터 군자의 기상을 매, 난, 국, 죽의 사군자 그림에 담았는데 잦은 전란과 보존 소홀로 조선 전기까지의 작품은 접하기 힘들어요. 이번 전시도 임란 2년 후인 1594년 이정이 그린 조선 후기 작품으로 시작됩니다.” 간송미술관의 ‘얼굴’ 최 실장은 불굴의 군자 기상을 누누이 되짚고, 조선의 문사들과 이 땅 이 시대의 정신세계를 견주며 군자 정신의 상실을 안타까워했다.
최고의 묵죽화가로 꼽히는 탄은 이정은 검은 비단에 금가루로 그린 ‘우죽(雨竹)’ 등 6점을 통해 강인한 민족성을 전해준다. 특히 거센 바람을 견디는 대나무 네 그루를 그려 관람객이 바람의 강도를 감지할 수 있는 ‘풍죽(風竹)’은 “탄은의 묵죽 가운데 최상의 품격과 기량이 돋보이는 걸작”으로 “역대 제일의 묵죽명인이 그린 우리나라 최고의 묵죽화”(백인산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상임연구위원)로 극찬받고 있다.
유덕장의 ‘통죽(筒竹)’ |
묵매의 일인자 어몽룡이 그린 이른 봄의 매화그림은 불굴의 절개와 강직한 기개를 보여준다. 겸재의 제자 심사정이 그린, 역경과 시련을 극복한 국화는 가장 오래된 국화작품으로 추정된다. 풍속화가 김홍도(1745~1856)의 매화와 대나무도 있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화원 김홍도는 문사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군자 기상이 살짝 부족한’ 회화적 사군자를 그렸다. 오달진(1597~1629)의 묵매화는 병자호란 때 그려진 ‘독한 그림’이다. 툭 부러질지언정 절대 휘지 않는 대나무 형상으로 자신의 충정을 묘사했다. 대원군 이하응은 추사의 난그림과 서체를 따라 그렸다. 항일운동으로 투옥됐던 김진우(1883~1950)의 묵죽은 칼처럼 날카롭고 뾰족한 모습으로 저항과 애국심을 전한다. 문사들은 산수화보다 간단히 그릴 수 있고, 단아하고 곧은 필획으로 선비 기상을 반영한 사군자를 필수교양과목으로 꼽은 셈이다.
번잡함을 뒤로하고 300~400년 전 사람들의 그림과 만나는 간송의 공간은 가쁜 호흡을 조절하며 인문학적 심상을 보듬는 소통의 현장이다. 다음 전시는 오는 10월에 열린다. (02)762-0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