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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원전 짓는다? 불붙은 뜨거운 논쟁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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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길 기자I 2025.12.01 04:00:00

[에너지와 미래-21]지산지소 정책과 도심 SMR
‘수도 헬싱키에 SMR 건설’ 핀란드가 던진 메시지
경제성+안전성+수용성 확보, 원전으로 기후대응
‘도심 원전 시대’ 가능하려면 기술개발 완비 필요
핀란드처럼 ‘투명 공개, 주민 참여’로 신뢰 얻어야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전기가 가장 많이 필요한 서울에 원전이나 전력 설비(변환소)를 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산 고리 원전과 경기도 하남시 감일동 동서울변전소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 여러 차례 들은 질문입니다. 서울의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송전탑과 변환소를 지방에 설치해 오면서 지역 내 갈등은 커지고 있습니다. “지방이 서울의 에너지 식민지냐”는 반발까지 나옵니다.

이재명정부는 이같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전력을 사용하는 지역에서 전력을 직접 생산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이 방식이 자리 잡으면 지역 곳곳에 송전탑을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감일동 변환소 신설 논란처럼 서울로 가는 전력망이 막힐 위험도 줄어듭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8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3년만에 한국에 온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SMR 개발사인 테라파워의 창업주이기도 한 게이츠 이사장이 “SMR이 AI나 반도체 등 첨단산업 분야의 전력 수요 증가에 효과적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하자, 이 대통령은 “한국이야말로 SMR의 강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대통령실사진기자단)
그렇다면 전력 소비가 가장 많은 서울에 전력 설비, 나아가 원전까지 짓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지난달 25일 한국지역난방공사 40주년 국제심포지엄에서는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 토론이 펼쳐졌습니다. 포문은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이정익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가 열었습니다.

“기술혁신은 인간의 통념을 깨면서 나온다.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원전이 안전하지 않다’는 통념을 깨기 위해 나온 기술혁신이다.…(SMR을) 강남에 지어도 문제가 없다. 기술에서 안전성 검증을 받았다.…SMR은 기존 대형원전보다 1000배나 안전하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SMR(Small Modular Reactor)은 기존 원전보다 3분의 1가량 작은 소형 원전입니다. 경제성, 안전성이 뛰어날 것으로 전망돼 미래 에너지원이자 차세대 원전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전기 생산뿐만아니라 지역난방용으로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SMR을 건설하면 1기당 수명이 100년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SMR 1호기를 각각 완성한 상황입니다. 미국 등 15개국은 2030년대 상용화를 목표로 한창 개발 중입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30년대에 각국의 SMR이 가시화되고, 25년 뒤인 2050년에 운영될 SMR이 전 세계 500기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참조 이데일리 11월19일자, IAEA 미래 전망…“韓 탈원전하면 SMR 수출길 막힐 것”)

우리나라도 2030년대 상용화를 목표로 한수원이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한국형 소형원자로(SMART100)를 만들고 있습니다. 한도희 IAEA SMR 총괄국장은 최근 이데일리와 만나 “글로벌 SMR 열기가 뜨겁다”고 전했습니다. 60개국 넘는 나라들의 교육·미팅·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까운 시기에 배치 가능한 소형모듈원자로(Near-term deployable SMRs)의 각국 개발 상황을 보여주는 표다. 러시아와 중국은 각각 2020년, 2022년에 1호 SMR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는 현재 개발 중이다. 우리나라도 2030년대 상용화를 목표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한국형 소형원자로(SMART100)를 만들고 있다. (자료=한도희 IAEA SMR 총괄국장)
글로벌 SMR 개발 및 사업 동향. (자료=이근우 한국전력기술 신기술사업처 부처장)
이미 핀란드는 수도 헬싱키에 SMR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의 SRM 개발업체인 스테디에너지는 헬싱키의 폐쇄된 석탄발전소 부지에 SMR 실증 설비를 완공할 예정입니다. 스테디에너지와 협력하고 있는 핀란드 에너지 회사 헬렌(Helen)은 지난달에 난방용 SMR의 헬싱키 도심 입지 후보지 세곳을 발표했습니다. 핀란드는 탄소중립 달성 목표 시점이 우리나라(2050년)보다 15년 빠른 2035년입니다.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원전을 전방위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한한 토니 니만 스테디에너지 대표는 지난 25일 국제심포지엄에서 “SMR 실증 설비는 헬싱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시민이 직접 접근할 수 있다”며 “앞으로 20개 원전을 더 짓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수도에 원자력을 짓는 것에 대해 일반 국민들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반대하는 정당은 없다”고 전했습니다.

실제로 핀란드 에너지산업협회(Energiateollisuus ry)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베리안(Verian)이 지난 4월 핀란드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68%가 ‘원자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답했습니다. ‘부정적으로 본다’는 응답은 9%에 그쳤습니다. 응답자 69%는 ‘원자력을 기후 변화 대응 도구로 받아들인다’고 답변했습니다.

응답자 68%가 ‘원자력에 대해 긍정적(positive)으로 평가한다’고 답했습니다. ‘부정적(negative)으로 본다’는 응답은 9%에 그쳤다. (자료=핀란드 에너지산업협회, 토니 니만 스테디에너지 대표)
이같은 여론조사까지 국제심포지엄에서 공개되자 본격적인 질의응답이 시작했습니다. 청중석에선 원전을 수도 한 가운데 짓는 것에 대해 잇따라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왜 핀란드는 되는데 한국은 안 되는가’라는 의문이었습니다.

A 청중은 “핀란드는 왜 이렇게 원자력에 대해 긍정적 인식이 높은가”라고 질의했습니다. 니만 대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핀란드에서 원전 안전 문제가 발생한 적이 없다”며 “공개 설명회 등으로 관련 기술을 비롯해 원전 관련해 주민들에게 설명을 많이 하는 등 투명한 소통을 했다”고 답했습니다. 이 결과 핀란드는 내년에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영구처분장)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영구처분장 위치조차 결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B 청중은 “어떻게 핀란드 도심 주민들을 설득했는가”라고 질의했습니다. 이에 니만 대표는 “안전성 확인, 투명한 공개와 더불어 주민들이 ‘원전 건설 시 수혜를 입는다’는 효용을 확인하자 수용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찬수 한국원자력연구원 고온원자로개발부 부장은 “SMR을 지역난방에 도입하면 난방비가 급감하는 경제적 효용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원전 안전 우려에 대한 질의는 계속됐습니다. C 청중은 “한반도는 지진에 취약한데 도심에 SMR을 설치하면 어떻게 안전을 확보할 것인가”라고 질의했습니다. 다목적 SMR 기술을 개발 중인 이근우 한국전력기술 신기술사업처 부처장은 “혁신형 SMR은 지진이 와도 중력의 30% 수준(0.3G)까지 견디는 매우 높은 내진 설계를 갖췄다”며 “도심에 SMR 설치 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핀란드의 SRM 개발업체인 스테디에너지는 헬싱키의 폐쇄된 석탄발전소 부지(위 사진)에 SMR 실증 설비를 완공할 예정이다. (사진=토니 니만 스테디에너지 대표)
물론 현 상황을 전반적으로 보면 도심에 SMR을 설치하는 게 기술적 논란을 완벽히 해소한 것은 아닙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근우 부처장은 “원전이 건설되려면 발전소 폐열을 식히는 해수와 강물이 있어야 한다”며 “도심 내 원전 설치 시 폐열을 식힐 수단이 없으면 설계적으로 볼 때 도심 안에 원전이 들어오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니만 대표는 “핀란드에서는 도심 SMR에서 나오는 열을 난방에 활용하기 때문에 냉각탑 등으로 열을 식힐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찬수 부장은 “캐나다에서는 원자력에서 나오는 열을 중수 생산 플랜트, 플라스틱 공장, 온실에 사용했다”며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만드느냐의 문제일뿐, 원자력 열을 산업단지 열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같은 열띤 질의응답과 토론을 보면서 깜짝 놀란 게 더 있습니다. 이같은 토론이 벌어지는 장소가 원자력학회나 원전산업협회가 아닌 지역난방공사 40주년 행사장이었다는 점입니다. 만약에 핀란드처럼 서울에 SMR이 건설돼 지역난방을 제공할 경우, SMR 운영 회사가 한수원이 아니라 지역난방공사나 민간 사업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르면 10년 이후 SMR이 상용화되는 과정에서 에너지 기술개발, 정책에 따라 지금과 다른 모습의 에너지 산업 생태계가 펼쳐질 수 있는 것입니다. 10여년 전에 석탄화력에 올인했던 발전5사가 지금은 풍력 등 재생에너지 기업으로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SMR이 도입될 경우 에너지 산업 구조가 어떻게 변화할지도 주목됩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Energy Policy Review Korea 2025)에서 “에너지 프로젝트 추진 시 가장 빠른 시점에 주민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한국에 권고했다. (자료=국제에너지기구)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민들의 수용성입니다. 핀란드 기업이 원전을 수도 헬싱키에 건설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원전 안전·운영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SMR 도입의 관건은 기술에 앞서 ‘신뢰’입니다. 안전성과 운영 정보의 투명한 공개, 주민 참여를 보장하는 의사결정 과정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도심 SMR은 현실화되기 어렵습니다. 향후 10년간 기술 개발과 함께 민주적인 에너지 결정 시스템도 완비돼야 합니다.

관련해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달 25일 공개한 보고서(Energy Policy Review Korea 2025)에서 “에너지 프로젝트에 대한 공공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이해관계자가 조기에 정기적으로 의미있는 참여를 해야 한다”는 취지로 우리나라에 권고한 내용을 전합니다. 이같은 IEA 권고 내용이 안전성·주민수용성 논란이 많은 원전 이슈나 동서울변전소 증설(변환소 신설), 전력망 이슈 등 국내 갈등을 해소하고 미래 기술을 논하는 단초가 됐으면 합니다.

“한국은 지역 사회와의 소통 기준을 설정해 공공 참여를 하는 국가 전략을 개발하고 채택해야 한다. (주민 등과의) 소통은 가능한 가장 빠른 시점에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계획이 처음 개발될 때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리고 허가 및 건설 단계를 포함해 소통은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이러한 소통 기준은 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함께 의견을 나눌 수 있는지, 계획 및 프로젝트 개발의 어떤 단계에서 참여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도록 할 것이다.”

*에너지와 미래=에너지 이슈 이면을 분석하고 국민을 위한 미래 에너지 정책을 모색해 봅니다. 매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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