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시장친화적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외국인 투자가들이 역대 최대 규모로 주식을 순매수하며 상승세를 이끌었다. 글로벌 투자금융회사인 골드만삭스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주식시장의 상승추세를 이끌 중요한 촉매제라고 평가했다.
미국 나스닥과 뉴욕증권거래소에서는 상장 종목이 수천 개에 이르며 대부분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때문에 다른 나라의 테크 기업들도 미국 증시에 상장하고자 줄을 선다.
미국 상장 기업은 주식시장의 자본을 끌어와 혁신기술에 투자하고 개발한 기술의 미래 잠재수익이 주식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평가받아 다시 자금을 모은다. 미국 기업들이 첨단 기술산업을 주도하고 지배할 수 있는 원동력이 주식시장을 매개로 하는 혁신과 자본의 선순환 고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주식시장만 놓고 보면 자본주의라 부르기 창피할 정도이다. 글로벌 테크기업과 견주는 국내 대표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미미한 수준이다. 국내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삼성전자가 450조원 가량이다. 현대자동차는 2023년도 영업이익이 15조원을 넘는데 시가총액은 48조원에 불과하다. 미래수익이 아니라 현재 수익 가치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순자산가치보다도 주가가 낮은 기업들이 널려 있다.
당연히 중소기업에 대한 가치는 더욱 낮게 평가된다. 중소기업이 미국처럼 주식시장의 모험자본을 끌어다 혁신기술에 투자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다. 주식시장에서 소외된 중소기업이 외부 자금을 조달할 방법은 은행 융자밖에 없다. 우리 중소기업의 혁신성이 떨어지는 주된 원인은 은행 차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에 있다. 만기에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 대출금을 불확실한 미래 기술에 투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되지 않는 것도 주식시장이 미흡한 탓이다. 벤처기업 가치가 낮게 평가받으니 투자금 회수가 불투명하다. 정부가 벤처기업 투자에 많은 혜택을 주고 모태펀드를 통해 자금을 공급해도 주식시장이 받쳐주지 않으면 반쪽짜리에 그친다. 상장(IPO)이건 인수합병(M&A)이든 궁극적으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주식시장에서 다른 투자자의 자금으로 회수돼야 한다. 주식시장의 발달을 빼놓고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주식시장이 미숙해 발생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민들이 주식투자를 기피하고 더 나아가 기업과 자본주의도 멀리하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개인이 직접 투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인식한다. 주식 투자로 이익을 본 사람보다 손해를 본 사람이 훨씬 더 많다.
우리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타지 못하고 10년 넘게 박스권에 갇히면서 단지 우량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수익을 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시장 평균보다 높은 초과이익을 얻기 위해 온갖 편법과 변칙이 성행한다. 개인 투자가들은 기업가치와 상관없이 유행과 테마를 좇아 몰려다니며 대박을 노린다. 증권사들은 고객들에게 주식을 사라 추천해 놓고 자기네들은 그 주식을 내다 판다. 기관투자가들은 주가가 올라가면 이익 실현을 명분으로 대량으로 매도하거나 공매도를 쳐서 상승세를 꺾어버린다.
그러니 일반 국민에게 주식투자를 권유하는 것은 돈을 잃으라고 내모는 것과 같다. 국민주라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어 많은 국민이 보유했던 주식치고 실망을 안겨주지 않은 주식이 없다.
대다수 국민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니 기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크지 않다. 기업이 잘되건 안되건 별 상관하지 않는다. 기업에 대한 규제가 늘어나도 반대하지 않는다. 요즘 논란이 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경영을 어렵게 만들고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해봐야 소용없다. 상속세율이 높아 중소기업의 가업상속이 어렵다고 호소해도 공감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반기업 정서가 팽배하고 기업규제가 무성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주식시장이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어 일반 국민이 주식을 보유하는 국민 주주 시대가 오면 기업에 대한 인식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규제도 대거 해소될 것이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