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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대학이 지식을 개방하면 벌어지는 일

송길호 기자I 2023.02.27 06:15:00
[이기준 연세대 치과대학장] 수십년간 미디어의 대표주자였던 TV의 영향력이 각종 SNS및 개인방송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할리우드의 절대 다수 영화사에서 극구 반대하던 OTT 서비스는 이제 영화 등 영상물의 인기를 판단하는 하나의 척도가 됐다. 여기에 인공지능 챗 GPT의 고도화된 서비스는 구글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학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의 저명한 학술지들에 도전장을 내밀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개 접근(Open access)을 전제로 연구자들을 끌어모으는 신생 학술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불확실성 때문에 미래를 예단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특정 추세가 주류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는 건 금물이다. 하지만 미디어의 각 분야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은 ‘콘텐츠의 개방과 접근성의 확대’다. 대면과 비대면 시장에서 소통의 다변화도 이에 포함될 것이다. 즉 한두개의 소통 채널을 인위적으로 제한해도 다른 채널을 통한 정보 유입을 통제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는 얘기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전환기에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대학의 생존전략을 생각해본다. 우선 콘텐츠의 개방과 접근성이 확대되는 흐름에 따라 공유 정책을 계속 확대하는 일이다. 학술적 성과를 유수 저널에 발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각종 채널을 통해 그 성과를 잘 알리는 일이 중요해졌다. 이런 지식의 대폭적 공유를 통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우수 인력의 관심을 유도할 수도 있다. 이들을 국내 대학에 유치해 생산적인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건 개방화의 한 모습이다. 예컨대 일부 대학에서 이미 실시하는 온라인 과정이나 별도 비학위과정의 확대를 통해 K-교육이 연구인력 유입의 진입로가 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지금 대학엔 해외 유학생들이 크게 늘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 기간 다소 증가세가 주춤했던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22년 16만명 선을 회복했는데 이는 10년 전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어학 연수나 단기 방문 등 비학위과정 학생수가 일시적으로 감소하긴 했지만 장기간 체류를 요하는 학위과정 유학생 수는 계속 늘어 전체의 78%에 달하는 12만 4000명이다. 일찍이 ‘인구절벽’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교육부가 정책적으로 해외 유학생 유치를 적극 유도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 기간 K-팝 및 드라마 등 한류열풍으로 대한민국의 인지도가 크게 상승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즉 국가적 소프트 파워의 상승이 대학에도 영향을 미친 셈인데 이는 콘텐츠의 개방과 접근성이 확대된 결과이기도 하다.

각종 체류 문제, 언어적 소통 및 생활 적응의 한계 등에도 불구하고 최근엔 한국 학생보다 더 뛰어난 연구 역량과 실적을 보이는 해외 유학생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의 양적 성장이 질적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옥석을 잘 가려 지원과 장려를 해준다면 이들 해외 유학생들이 국가 연구개발 역량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수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다각도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내국인뿐 아니라 해외에서 유입된 해외 연구인력 중 탁월한 성과를 보이는 연구자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연구활동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 해외 유학생들은 연구직으로 잔류하거나 산업체 취업을 위해선 비자 연장 문제 등 각종 제약조건이 많다. 산업계가 우수 인력 확충에 전력을 다하는 상황에서 해외 우수인력 채용이 좀 더 원활해질 수 있도록 정부의 관심이 필요한 지점이다. 해외 유학생의 연구교원 임용도 적극 장려해야 한다. 연구개발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연구개발 인력 확충은 글로벌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위기의 순간엔 폐쇄적 정책보다는 개혁, 개방이 더 효과가 있었다. 대학의 위기도 이런 콘텐츠의 개방과 인력의 개방화 정책으로 새로운 기회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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