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 CNBC 등에 따르면 이날 뉴욕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장중 149.04엔까지 상승했다. 달러화와 비교한 엔화 가치가 약세를 보였다는 의미다. 달러·엔 환율이 149엔을 돌파한 것은 1990년 8월 이후 32년여 만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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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는 ‘킹달러’ 현상을 극명하게 상징하는 통화다. 달러·엔 환율은 1년여 전인 지난해 9월만 해도 110엔을 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연방준비제도(Fed)의 공격 긴축이 겹치며 달러화가 초강세를 띠면서, 달러·엔 환율은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준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엔화가 불과 7개월 만에 110엔대 레벨에서 150엔대를 넘보게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웬만한 신흥국이면 외환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속도다.
이날 특히 주목할 것은 영국의 감세안 대거 철회에 파운드화와 유로화 가치가 뛰고 상대적으로 달러화 가치가 하락했음에도 엔화만 유독 떨어졌다는 점이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지수화한 달러인덱스는 이날 장중 111.92까지 내리며 112선이 깨지기도 했다. 엔화의 날개 없는 추락이 얼마나 추세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즈키 순이치 일본 재무상은 “투기 등에 따른 (엔화 가치의) 과도한 변동이 있다면 단호한 조처를 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며 외환시장 개입에 재차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음에도 엔저를 막지 못했다. 월가에서는 달러당 150엔 돌파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는 일본 경제를 장기 불황에 빠뜨린 1980년대 거품 경제 때나 볼 수 있던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엔화가 지지선 자체를 찾지 못하는 분위기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엔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것은 미국을 따라 각국이 강경 긴축에 나서고 있음에도 일본만 나홀로 돈 풀기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 완화 방향성이 잡힌 상황에서 일시적인 엔화 매수 개입은 약발을 받을 수 없다는 게 대다수의 지적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최근 국제금융협회(IIF) 멤버십 연례 총회에 나와 “일본의 경기 회복을 위해 계속 통화 완화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로다 총재는 엔화 초약세를 두고서는 “일부 섹터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통화가치가 떨어지면서 전반적인 거시경제 상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환율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계속 주시할 것”이라고 했지만 현재 정책을 되돌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월가에서는 장기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BOJ의 채권수익률곡선 통제(YCC) 정책이 엔저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YCC를 포기해야 한다는 진단이 많은데, BOJ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