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diaspora·고국을 떠난 사람)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너머’를 뜻하는 디아(dia)와 ‘씨를 뿌리다’라는 스페로(spero)가 결합한 합성어다. 본래는 유대인(이산인·離散人)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최근엔 탈국경·세계화로 인해 그 의미가 확장됐다. 노동, 생계, 망명, 전쟁난민, 입양, 결혼이주 등 다양한 정체성을 다룬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세계 권위의 주요 문학상들도 디아스포라 문학에 주목한다. 지난해 10월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자로 탄자니아 출신의 영국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2)를 호명했다. “식민주의의 영향과 대륙 간 문화 간 격차 속에서 난민이 처한 운명을 타협 없이 연민 어린 시선으로 통찰했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특히 전쟁 난민을 우리 지척에서 목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153일째(7월27일 기준) 계속되고 있고, 지난해 9월에는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현지에서 한국 정부 활동을 지원해오다, 지난해 8월 무장세력 탈레반을 피해 특별기여자 신분으로 울산 등의 지역에서 살고있다.
세계 문학 시장에선 포용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디아스포라 문학이 이미 주류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시선은 다양하되 그 종착점은 연대와 관용, 화합을 관통한다. K(한류)-디아스포라도 장르, 소재, 세대 경계를 넘어선 한국적 정서로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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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전쟁일기’(이야기장수)는 절박한 생존일지에 가깝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24일 첫날부터 약 한 달 동안 우크라이나 출신 그림책 작가 올가 그레벤니크(35)가 몸소 겪은 전쟁의 참상을 연필 하나로 스케치한 다큐멘터리 일기다. 거친 연필선의 글과 그림이 가득한 책장마다 전쟁의 서늘한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전쟁 발발 153일째(7월26일 기준) 우리의 지척에 있는 실제 상황이다.
작가는 35년 인생 전체를 버리는 데 고작 10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배낭 하나 겨우 챙겨 메고 피난길에 올랐다. 전쟁 이전, 때마다 적십자에 옷을 기부해 왔던 올가는 하루아침에 난민 신세가 됐다.
책은 피난 생활을 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 생생한 기록물이다. 김하나 작가는 이 책에 대해 “뉴스가 전하지 못하는 전쟁의 진실이 이 작은 책에 모두 담겼다”고 말했다. 올가는 계엄령으로 발이 묶인 남편과 부모를 남겨두고, 홀로 두 아이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두 번이나 국경을 넘어 불가리아에서 임시난민 자격으로 머물고 있다.
책은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출간돼 주목받았다. 1인 출판사 이야기장수의 이연실(38) 대표 덕분이다. 이 대표는 작가의 인스타그램 친구인 한 한국인의 제보로 올가를 알게 됐고, 고민 없이 출간 작업에 들어갔다. 2월24일부터 3월12일까지 올가가 노트에 적어둔 그림과 글을 이메일로 받아 4월5일 한국의 인쇄소에 전달해 보름 만에 탄생한 책이다.
◇개정판 출간 ‘파친코’ 자이니치 4대 연대기로 주목
이민 1.5세대인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54)이 쓴 ‘파친코’는 올 3월 동명의 애플TV+ 드라마로 제작되며 전방위적 관심을 받았다.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로 세계 각국에 방영되면서 당시 미국 온라인 서점 아마존북스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70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 반응은 더 뜨겁다. 인플루엔셜 출판사가 번역을 새롭게 해 예약 판매를 시작한 이달 11일 교보문고와 알라딘, 예스24 등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동시에 종합 판매 순위 1위를 찍었다. 두 권짜리 소설 파친코가 국내 독자들에게 돌아온 건 3개월 만이다. 기존 국내 출판사와 판권계약 만료로 절판됐다가 최근 개정판이 나온 것이다. 파친코 1권은 27일 출간되고 2권은 다음달 말 선보인다.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6년 미국 뉴욕으로 부모를 따라 이민을 간 이 작가가 예일대 역사학과 재학 시절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또는 조선인) 이야기를 구상한 뒤 2017년 미국 출간까지 약 30년이 걸렸다.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1980년대 일본 버블경제까지 역사적 흐름에 내맡겨진 재일조선인 4대의 연대기다. 역사적 재앙에 맞선 개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작가는 소설 ‘파친코’의 함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게임을 저는 인생의 비유로 봅니다. 저는 인생이 때론 불공평하다고 믿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게임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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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디아스포라 문학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저변을 넓혀가는 것도 문학계 주목받는 이유라는 평가다. 이달 출간한 시집 ‘그 여자는 화가 난다’(난다)는 눈물의 신파 너머 가려진 입양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한국 이름은 이춘복, 입양아 출신 한국계 덴마크 작가 마야 리 랑그바드(42)는 2007~2010년 서울에 거주하며 이 책을 썼다. 책은 개인사를 넘어 ‘입양 산업’을 방치하거나 육성한 국가 간 입양의 부조리에 분노를 터뜨린다. 작가 마야의 분노는 입양인, 여성, 퀴어 등 소수자로서 살아가며 부딪혀야 했던 현실에 대한 증언이다.
구르나의 작품은 노벨상 수상 이후 7개월 만에 문학동네를 통해 국내 번역돼 나왔다. 이번에 번역된 작품은 ‘낙원’(1994), ‘바닷가에서’(2001), ‘그후의 삶’(2020) 등 세 권이다. 각각 작가의 초기, 중기, 후기 문학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공통적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주의 통치가 남긴 유산과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상실감을 그린다.
그의 글은 어느 작가보다 리얼한 디아스포라 문학일 수밖에 없다. 그는 탄자니아의 섬 잔지바르 출신의 난민이다. 스무살, 아랍계에 대한 박해로 고향을 떠나 영국에 정착했다. 국내 출간을 기념해 한국 언론과 가진 화상 간담회에서 구르나는 “배타성과 타인에 대한 거부는 역사적으로 모든 사회에서 항상 발견돼 왔다”며 “누군가의 삶이 전쟁 폭력 궁핍에 의해 위협받는다면 우리는 그들을 인류로서 환대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낙원’을 번역한 왕은철 전북대 영문과 석좌교수는 해설을 통해 “구르나의 소설에서 국가나 국가주의는 서술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의식의 차원에서도 부재한다”며 “국가의 부재가 곧 그들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강영숙 작가가 해석하는 디아스포라의 문학적 의미는 곱씹게 만든다. 강 작가는 2019년 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한 ‘코리아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열린 이산문학 교류행사에서 ‘상처와 역사’를 이야기하며 “외로운 사람들, 밀려난 사람들,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 고통의 대가로 사유의 힘을 얻는다. 그 사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추방된 곳, 떠나온 곳을 상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