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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오락가락하는 정부 행보를 보면서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시하면서 이제라도 중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의 큰 그림을 다시 그려 나가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전력 수급에 이처럼 비상이 걸린 것은 근본적으로는 많이 써서라기보다는 모자라서다. 문재인 정부 들어 탈석탄, 탈원전 정책을 급속히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전력수요를 낮춰 잡아 수급 불안을 가져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원전 재가동 승인을 미뤄 왔던 원자력안전위원회도 블랙아웃(대정전) 우려가 급속히 확산하자 지난주 16일 신월성 1호기에 대한 가동 승인을 내린 것을 시작으로, 오는 22일쯤 화재로 정지됐던 신고리 4호기 재가동을 승인한 뒤 월성 3호기에 대한 재가동 승인까지 마무리해 이번 주 중으로 전력 공급을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당장의 블랙아웃 우려는 덜 수 있겠지만, 그동안 `탈원전은 확고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현 정부가 전력 수급 비상단계를 막기 위해 원전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셈이다.
이번 전력 위기의 최고 주범은 정부의 실종된 에너지 백년대계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차제에 원천적이고 본원적인 문제, 원전을 빼고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모순적인 상황부터 되짚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 2019년 발표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보면 원전·석탄발전의 점진적·과감한 감축 등을 통해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믹스로 전환한다고 했다.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선의에 기초하지만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는 말을 뒤집어보면 원자력은 더럽고 위험한 에너지라는 이중성을 지닌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반대급부로 원자력을 제로(0)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가 기술 개발로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할 것이라 믿는 것처럼 원자력도 기술 개발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에너지 소비의 약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에너지 강국으로 갈 수 있는 해법은 다양성이다.
이창호 가천대 교수는 “에너지를 과거처럼 오직 경제성만으로 따지던 시대는 지나갔다”며 “그렇다고 오직 환경성만으로 재단하기도 어려운데다 공급안정과 신뢰성, 경제성, 환경성, 지역적 수용성과 같은 여러 가치를 동시에 고려할 수 있는 새로운 전력시스템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