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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줄도산 가능성과 증시 환경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증시는 너무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헤지펀드의 제왕으로 불리는 스탠리 드러켄밀러 뒤켄패밀리오피스 대표)
미국 증시의 거품론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곤두박질 치는 와중에 주가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어서다. 월가(街)를 주름잡는 큰 손들은 잇달아 증시 고평가를 지적하고 나섰다.
◇“증시 고평가” 월가 큰 손 잇단 경고
14일 마켓포인트 등에 따르면 뉴욕 증시 주요 지수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코로나19 충격으로 3월 23일 당시 2237.40까지 폭락한 이후 3~5월을 거치며 반등해 지난 11일에는 2930.32까지 올랐다. 3월 말 이후 두달여만에 31%가량 폭등한 것이다. 그 사이 코로나19발 악재들이 쏟아져나왔다는 점에서 월가의 랠리는 이례적이다.
뉴욕 증시를 끌어올린 힘은 미국 정부의 파격적인 돈 풀기 덕이다. 연방준비제도(Fed)는 제로금리(0.00~0.25%)와 무제한 양적완화(QE)를 통해 전례없는 통화정책 실험을 진행 중이다.
에드 야데니 야데니리서치 대표는 “연준은 바주카포와 헬리콥터를 건너뛰고 B-52 전략폭격기로 직행해 현금으로 금융시장을 폭격하고 있다”며 “시장의 즉각적인 반응은 ‘돈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증시 랠리와 펀더멘털 사이의 괴리다. 기업이 성장해서 주식 가격이 오르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국제금융센터 등의 분석을 보면, 현재까지 S&P 500에 속한 기업 중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한 448개사의 주당순이익(EPS)은 전년 동기 대비 11.1% 감소했다. 주당순이익은 순이익을 주식 수로 나눈 값이다. 주당순이익이 낮다는 것은 이익 규모가 줄어 경영이 불안정하다는 의미다. 경기소비재 업종(-44.7%)의 타격이 특히 컸다. 자동차, 항공, 백화점, 레저 등이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에서 미국 델타항공의 1분기 손실은 5억3400만달러(약 6555억원)에 달했다. 5년 만의 첫 분기 적자다. 금융(-38.1%), 에너지(-30.5%) 등의 감소 폭도 커졌다.
더 심각한 건 2분기다. 국제금융센터가 주요 투자은행(IB) 전망치를 취합한 자료를 보면, 2분기 S&P 500 기업들의 주당순이익 성장률은 -41.6%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8년 4분기 이후 최저다. 3분기 때는 -23.8%까지 고꾸라질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추가 폭락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상당수 기업들이 코로나19 여파가 워낙 불확실하다 보니 1분기 실적 발표 때 향후 가이던스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S&P 500에 속한 기업 중 162개사나 된다.
테퍼 창립자와 드러켄밀러 대표가 이날 지적한 증시 거품론은 이와 직결돼 있다. 드러켄밀러 대표는 “코로나19 치료제인 렘데시비르에 대한 과민반응이 증시 랠리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백신의 대량 유통이 늦어진다면 주가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는 “연준의 정크본드 매입 등은 좀비기업을 양산해 경기 회복을 방해할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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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 역시 추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향후 석달간 S&P 500 지수가 2400선까지 조정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그 이유로 △미·중 긴장 심화 △미국 대선 불확실성 등을 꼽았다.
투자회사 레이먼드제임스의 에드 밀스 정가 분석가는 “미국과 중국의 긴장은 갈수록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연말에는 정면대결 양상으로 갈 것”이라며 “그러나 지금 시장은 이런 위협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선 가능성이 줄었다는 평가를 받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퇴장’도 변수다. 만약 민주당 대권주자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상원까지 거머쥘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법인세 인하 등은 없던 일이 될 수 있다. 좌편향 경제정책은 월가에 달갑지 않은 뉴스다. 골드만삭스는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정책이 없어지면 S&P 500 지수의 주당 평가액은 19달러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