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미계약 잔여가구를 잡으려는 ‘묻지마 투자’가 확산하고 있다. 분양시장 규제 강화로 1순위 청약 요건을 갖추지 못한 실수요자는 물론 다주택자 등이 ‘무조건 넣고 보자’는 식의 투기 심리가 강해지면서 미계약분 청약시장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국토교통부는 이르면 오는 9월 청약 시스템을 개편해 미계약분 인터넷 청약 의무화, 실수요자가 아닌 투기세력의 잔여가구 추첨 제외 등을 시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강제성이 약한데다 반대 여론에 부딪쳐 소극적인 ‘땜질식 처방’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일단 잡고 보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투자자
아파트 미계약 잔여 가구는 아파트 청약 과정에서 당첨자와 예비당첨자가 모두 계약을 하지 않아 남은 물량을 말한다. 미계약분은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 수 등 청약가점과 관계없이 선착순이나 현장·인터넷 추첨 등을 통해 주인이 결정된다. 이 때문에 지난해 8·2 부동산 대책에 따른 분양시장 규제 강화(청약조정대상지역 1순위 청약 가입기간 최소 2년, 재당첨 제한, 가점제 강화 등)로 1순위 등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한 실수요자는 물론 투자자들이 미계약 추첨에 목을 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실제 지난 11일 현대건설이 진행한 ‘힐스테이트 금정역’은 미계약 잔여세대 공급에서 84㎡B형 8가구 모집에 1만7960명이 몰려 2245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보통 입지가 좋고 가격 메리트가 있는 분양 단지는 일찌감치 1순위에서 청약을 마감한다. 다만 이런 인기 단지라도 정부 규제 강화로 최근 부적격 당첨자가 적지 않게 나오는데다 까다로워진 중도금 대출 조건, 원치 않는 동·호수 배정 등의 사유로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5월 준강남으로 평가받는 경기도 과천에서 공급한 ‘과천 센트레빌’(옛 과천주공12단지)도 마찬가지다. 이 단지는 높은 청약경쟁률에도 계약률은 절반(일반분양 57가구 중 30가구 미계약)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토부 청약제도 개선…“부적격 양산 시스템부터 바꿔야”
이런 청약시장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국토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동안 사업주체인 건설사 등에 맡겼던 미계약분 공급 방식을 금융결제원 주택 청약시스템(아파트투유)를 통해 신청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할 방침이다. 사실상 지난 2015년 주택 청약제도 간소화로 폐지된 청약 3순위 제도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또 실수요자들에게 미계약 잔여가구를 우선 배분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체 공급 물량에서 일부만 미계약 물량으로 남은 단지까지 인터넷 청약을 의무화하는 것은 행정적으로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투기과열지구 등 일부 지역과 일정 규모 이상 물량에만 차별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토부 개정안(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실효성이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정당계약(청약 당첨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계약) 후 남은 잔여분에 대한 온라인 청약에는 어느 정도 동감하지만, 실수요자들에게 우선 배정하는 것은 이미 수차례 청약 절차를 거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역차별이 될 수 있다”면서 “시장 과열을 핑계로 내집 마련 신청도 금지한 마당에 자꾸 규제를 가하면 미분양을 떠안고 있는 건설사들이 과연 이를 따를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미계약분을 실수요자에게 우선 배정하는 문제는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며 “(개정 후에는) 수차례 경고 등을 거쳐 제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선제적으로 주택 청약 접수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3순위 청약 과정에서 실수요자들을 우선 배정하면 부적격 탈락자가 또다시 나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청약 접수 과정에서 재당첨자나 무주택 기간 등을 잘못 입력하면 사전에 걸러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제대로 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