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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씨는 경기중계를 맡은 배성재 캐스터가 잘 풀리지 않는 경기에 아쉬움을 표하면 표정을 구기고 손을 머리에 얹어 아쉬움을 ‘통역’했다. 전반 26분 멕시코의 카를로스 벨라 선수가 골을 넣자 해설자들의 분노를 주먹으로 허공을 쳐 보여주기도 했다.
이날 62명 청각장애인들의 ‘소리없이 열띤’ 응원 속에 그들의 귀가 되어준 추씨는 “시청자들이 경기를 즐겁게 볼 수 있도록 방송사들이 더 좋은 해설위원을 모시려고 경쟁하지만 막상 청각장애인들의 즐길 권리는 뒷전이 돼 왔다”며 “수화 해설이 보편화 돼 청각장애인들도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사회가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외국 선수 이름 수화 통역 어려워…첫 중계 부담에 일주일간 ‘열공’
지난 24일 진행된 ‘멕시코전 수화해설팬파크’는 평소 축구해설을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현대자동차가 주최한 행사다. 국내 최초로 90분짜리 축구 경기를 전부 수화로 해설했다. 906명이 신청해 추첨에 뽑힌 62명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날 현대차가 준비한 대형 스크린 우측엔 추씨와 또 다른 수화통역사의 수화해설 화면이 떠 있었다. 추씨를 비롯한 네 명의 수화통역사가 둘씩 짝을 지어 각각 캐스터와 해설위원을 맡아 전·후반 수화통역을 진행했다. 추씨는 전반 45분간 배성재 캐스터 통역을 맡았다.
추씨는 “10년차 수화통역사지만 축구 경기 해설을 라이브로 통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처음이라는 부담감에 일주일 동안 멕시코와 우리나라의 경기를 8번 넘게 돌려보며 각 선수의 장점을 미리 파악했다”고 했다.
특히 추씨는 “외국선수 이름은 수화로 자음 모음을 다 따로 표현해야 하는데 빠르게 통역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가장 어려웠던 건 멕시코 수비수 ‘헤수스 가야르도’였다. 헤수스는 빼고 가야르도만 통역했는데도 손동작이 많이 겹쳐 애를 먹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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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씨는 축구 중계에 있어 자신의 특장점으로 풍부한 표현력을 꼽았다. 추씨는 “수화는 손짓 뿐 아니라 표정과 몸짓으로도 표현해야 하다”며 “경기 분위기를 수화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아 표정과 수화를 병행해 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도 덧붙였다. 이날 추씨는 온몸을 동원해 수화통역을 한 탓에 전반이 끝나자 온 몸이 땀에 젖었다.
◇“방송사들 스포츠 해설 수화 통역에 관심 가져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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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서 행사장인 일산까지 3시간을 걸려 왔다는 장모(28)씨는 “평소 축구 볼 땐 해설을 들을 수 없어 답답했다”며 “수화 해설과 함께 경기를 보니 더 실감난다”고 흡족해 했다.
친구와 함께 행사장을 찾았다는 이모(23·여)씨 역시 “평소엔 반칙이나 파울 등 심판의 판정이 어떤 이유로 내려졌는지 알수가 없어서 궁금한 부분이 많았다”며 “오늘 수화 해설 통역 덕에 경기 내용을 이해하면서 축구를 볼 수 있어 즐거웠다”고 말했다.
추씨는 더 많은 청각장애인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했다. 추씨는 “팬파크 측에서도 신청자가 많아서 놀랐다고 하더라”면서 “추첨에 떨어진 사람 중에서는 왜 공중파에는 해설 수화통역이 안 나오냐며 원망하는 분들도 계셨다”고 전했다.
추씨는 이어“공중파들은 해설진으로 누굴 모실지는 고민하지만 청각장애인들이 이런 재미를 누릴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하지 않는다”며 “방송사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청각장애인도 스포츠 경기를 즐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