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 오신 날인 3일 오후 서울대(총장 성낙인) 관악캠퍼스 대학본부(행정관) 앞. 낮 최고기온이 30도에 육박하는 초여름 날씨를 보인 이날 행정관 앞 유리문에는 ‘행정관 무단침입·점거 경고문’이 게시돼 있었다.
건물 1층 로비와 2층 복도는 학생 10여명이 점거 농성 중이었고 행정관 주위로 교직원 20여명은 휴일임에도 학생들의 추가 진입을 막기 위해 진을 치고 있었다. 총장 사퇴와 시흥캠퍼스 설립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재점거 농성 사흘째, 국내 최고 ‘지성의 전당’ 서울대는
◇점거 농성 강행 VS 징계·형사고발…폭력의 악순환
서울대가 다시 폭력 사태로 얼룩졌다. 시흥캠퍼스 설립 계획 백지화와 성낙인 총장 퇴진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 10일부터 올 3월 11일까지 153일간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인 학생들을 학교 측이 강제 해산한 지 50일 만이다.
지난달 27일 학생 20여명이 총장 면담을 요구하며 기습적으로 본관에 진입해 로비에서 연좌 농성을 다시 시작했다. 닷새 만인 지난 1일 학교 측은 직원들을 동원해 학생들을 끌어냈고 이 과정에서 학생 2명과 청원경찰 1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같은 날 ‘총궐기 대회’를 열고 본관 재진입을 시도했고 쇠사슬로 묶인 현관문을 뚫지 못하자 사다리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 망치로 유리창을 깼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재물손괴는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범법행위이니 자제하라”는 경고 방송을 반복했지만 소용없었다.
서울대는 이튿날 총장 명의의 담화문을 내고 “학생 시위의 도를 넘은 중대한 범죄 행위”라며 “반복적인 불법행위를 엄단하기 위해 행정·사법적 조치를 취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학생 측은 그러나 “폭력을 일삼는 학교에 맞서 싸울 것”이라며 점거 농성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사태 장기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화·타협 대신 힘의 논리 횡행…학내 여론도 싸늘
민주주의의 산실이어야 할 상아탑에서 대화와 타협 대신 힘의 논리만이 팽배한 모습에 학내 구성원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라는 탄식이 대학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학교 측은 총장 면담 요청에 귀를 닫고 학생 측은 기존 계획 백지화만을 고집하면서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극단적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점거→강제해산→재점거’ 등 폭력 사태가 반복되면서 교내 여론도 싸늘하게 식고 있다.
한 보직교수는 “학생들이 다시 행정관을 점거한 것은 악수(惡手)를 둔 것”이라며 “주장의 정당성을 떠나 교수 사회와 직원의 지지를 잃었다는 지적이 많다”고 전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는 움직임에 불만을 터뜨렸다.
경제학과 4년인 정모(26)씨는 “시흥캠퍼스 설립 계획은 전면 철회하는 게 맞다”면서도 “원론적이더라도 대화를 통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학과 2년인 이모(21)씨도 “과격한 방법을 써 가면서 점거 농성을 유지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라며 “기물 파손까지 하면서 학생 측이 마냥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에 공감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