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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장에 드러난 국정농단 실태…최순실이 결정하면 대통령이 지시

전재욱 기자I 2016.11.21 04:30:00

공소장에 드러난 비선실세 최순실의 권한
겉으로 대통령 지시지만 실제로는 최씨 언급과 일치
''최씨 언급→대통령 지시→범죄 실행'' 구조
대통령 "재단 명칭 미르로 하라" 직접 지시하기도
檢 "대통령 직권을 남용…대기업은 두려워 출연금 내"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리커창 중국 총리가 곧 방한할 예정이고 대통령이 중국과 문화교류를 활발히 하자고 했으니 양국 문화재단 간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미르재단 설립을 서둘러라” (리 총리 방한 전 최순실씨가 정호성 부속실비서관에게 전달한 내용)

“리커창 중국 총리 방한 때 양국 문화재단 간 양해각서를 체결해야 하니 재단 설립을 서두르라”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10월19일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에게 지시한 사항)

◇외국정상 방한 악용해 미르재단 설립 강행

20일 기소된 최씨의 공소장을 보면, 당시 최씨가 정 비서관에게 한 말과 박 대통령이 안 수석에게 지시한 사항은 거의 일치한다. 발언 시점은 최씨의 말이 박 대통령 지시보다 앞선다.

검찰의 조사결과대로라면 최씨의 지시가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흘러간 뒤 안 전 수석에게 전달된 것이다.

최씨가 보안사항인 외국 정상의 방한 일정까지 미리 알고 잇속을 챙기기 위한 수단까지 악용한 것은 물론, 고위공직자인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민간인 최씨의 지시를 받아서 미르재단 설립을 추진한 셈이 된다.

지지부진하던 미르재단 설립은 이후 급물살을 탄다.

안 수석은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당일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에게 “급하게 재단을 설립해야 하니 전경련 직원을 청와대 회의에 참석시키라”고 지시한다. 이틀 후 열린 회의에서 당시 최모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은 “300억 원 규모의 문화재단을 설립해야 한다. 삼성·현대차·SK·LG·GS·한화·한진·두산·CJ가 출연해야 한다”며 출연기업 명단까지 지목해서 전경련 측에 전달한다.

그날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재단 명칭은 용의 순수어로 신비롭고 영향력 있다는 미르로 하라”며 손수 재단 명칭을 명명하고 임직원 명단까지 내려보낸다. 임직원 명단은 청와대의 재단설립 물밑작업이 한창이던 당시 최순실씨가 면접을 거쳐 뽑아둔 후보와 동일했다.

청와대의 하명을 받은 전경련 측은 10월23일 9개 그룹에서 출연금 300억 원에 대한 동의를 받은 재산 출연증서와 정관, 창립총회 회의록 작성까지 마친다. 이후 최 비서관이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롯데가 빠졌다”고 항의하고, 안 수석은 이승철 부회장에게 “출연금 규모를 500억 원으로 증액하라.KT·금호·신세계·아모레를 반드시 포함하고 현대중공업과 포스코도 연락하라”고 주문하면서 재단 설립 규모가 다시 커진다.

이후 기존 9개 기업의 출연금을 늘리고 신규 출연 기업(LS와 대림,SK하이닉스 추가)을 섭외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재단설립은 청와대에서 데드라인으로 정한 10월27일에 맞춰서 빈틈없이 이뤄졌다. 꼭 필요했던 출연 대기업 전부의 동의서류가 미비한 채, 재단설립 신청 당일 이뤄진 날림 작업이었다. 대통령의 지시(10월19일) 이후 8일 만에 486억 원 규모의 미르재단이 탄생했다.

올 1월 세운 케이스포츠재단 설립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씨가 미리 재단 임원 면접을 보고 명단을 추리고, 박 대통령이 해당 명단을 임원으로 선정하라고 안 수석에게 지시하고, 안 전 수석이 전경련 측에 300억 원 규모의 재단을 “미르 때처럼 진행하라”고 명령하면 전경련은 대기업에 출연을 요구하는 식이었다. 288억 원이 모이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檢 “대통령 직권남용 범죄”

롯데그룹은 지난 6월 본격적인 검찰 수사를 받기 전까지 70억 원을 K스포츠재단에 지원해야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3월 박 대통령 독대 이후 이뤄진 그룹 차원의 지원 결정이었다.

포스코그룹은 창단 비용 16억 원을 들여서 펜싱팀을 창단해서 관리를 최씨의 개인회사 격인 더블루K에 맡겼다. 이 또한 박 대통령과 권오준 회장이 2월 독대한 이후 추진된 사업이었다. 애초 무리한 요구라며 포스코 측이 받아들이지 않자 최씨가 안 수석에게 “포스코가 더블루K를 잡상인 취급한다”며 민원을 넣은 끝에 성사된 계약이었다. 아울러서 KT에 최씨 측근 인사 2명을 광고업무 전담 임원에 꽂는 데도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안 수석의 역할 컸다.

개인적으로 최씨는 자신이 지난해 10월 광고회사를 설립하고서 현대차 광고 70억 원어치를 받아서 9억 원 넘는 이득을 챙겼다. 박 대통령은 올 2월 재벌회장을 독대하고 난 뒤에 안 수석에게 “플레이그라운드는 아주 유능한 회사로서 대기업에 협조를 요청했으니 살펴보라”고 안 수석에게 지시해서 가능했던 일이다.

최씨의 전횡은 딸 정유라씨와 인연을 맺은 지인에게 특혜를 몰아주기까지 이른다. 박 대통령은 2014년 11월 안 수석을 불러서 “케이디코퍼레이션은 훌륭한 회사인데 외국 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니 현대차가 도와줄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이 회사는 설립한 지 20년 정도 된 자본금 18억 원 규모의 소규모 제조업체다.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과 동석한 자리에서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게 “현대차가 케이디코퍼레이션을 도우라”고 요구했다. 케이디코퍼레이션은 지난해 2월 현대차와 계약을 맺은 이래 지난 9월까지 10억 원이 넘는 실적을 올렸다. 검찰 조사 결과, 케이디코퍼레이션 대표 이모씨는 최씨가 딸 정유라씨가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친분을 맺은 학부형이다. 이씨는 최씨 덕에 박 대통령 프랑스 순방에 동행하기도 했다. 이씨는 특혜 계약 성사 대가로 최씨에게 5000만 원가량의 금품을 제공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이 모든 행위가 대통령 직권을 남용한 결과라고 결론짓고서 박 대통령을 최씨의 공범으로 지목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대기업들은 대통령의 요구에 불응하면 세무조사를 당하거나 인허가 등 기업활동 전반에 불이익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출연금을 냈다”며 “대통령의 직권을 남용했고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들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명시했다.

현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 특별수사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20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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