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오전 9시부터 바쁜 하루를 시작한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오후 3~4시. 늦게까지 수업이 있는 날은 오후 6시가 돼야 끝난다. 바이올린 연습을 하기 위해선 수업 틈새와 이후시간을 활용해야 한다. 오롯이 연습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많아야 4시간 남짓. 연습해야 할 곡은 많지만 학교수업과 콩쿠르 준비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늘 시간이 부족하다.
차세대 클래식스타를 꿈꾸며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김계희(22) 씨의 하루일과다. 김씨는 7세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비학교에서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10세에 금호영재콘서트 시리즈를 통해 데뷔했다. 지난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박성용영재특별상 수상, 영 차이콥스키음악콩쿠르 3위, 그네신주니어콩쿠르에서 1위와 함께 비루투오조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서울예술고를 명예졸업하고 현재는 서울대 음대 3학년에 재학 중.
요즘 김씨는 내년에 열리는 한 유명 국제콩쿠르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 따로 콩쿠르를 위해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없기 때문에 순전히 ‘개인역량’이 수상실적이 된다. “담당교수의 레슨이 일주일에 한 번씩 있다. 학교가 오후 11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수업 후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3~4시간 정도다. 휴학을 하거나 학점을 적게 들어서 시간을 확보하는 게 방법이지만 어차피 졸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못한다.”
최근 쇼팽피아노콩쿠르나 차이콥스키콩쿠르 등 유명 콩쿠르에서 한국인 수상자들이 나오면서 국제콩쿠르가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이를 겨냥해 준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국제대회의 경우 1차로 연주영상(DVD)을 심사하는데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잡지 못하는 등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이상국제콩쿠르, 동아음악콩쿠르 등 국내의 크고 작은 수십여개 대회를 타겟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 비해 국제대회에는 연주곡이 2배 이상 많은 것도 부담이다. 국내대회의 경우 준비해야 하는 연주곡 수가 2~3개인데 반해 유명 국제대회는 자체 심사곡을 포함해 기본 10곡 이상을 준비해야 한다. 최근에는 콩쿠르재단에서 비행기값과 숙식을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지원이 안 된다면 반주비와 의상, 비행기까지 수백만원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국제콩쿠르는 연주곡이 많아 도전 자체가 쉽지 않다. 학교수업을 병행하면서 10곡을 연습하는 게 만만치 않다. 많은 학생이 관심을 갖지만 그만큼 많이 나가지 못하는 이유다. 국제콩쿠르에 한번 출전하면 돈 1000만원이 금방 깨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학생들에게 콩쿠르가 필수옵션인 이유는 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은 물론 앞으로의 활동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수상실적이 있으면 아무래도 연주활동에 유리하다. 유명 콩쿠르에서 수상하면 이력이 오래갈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은 경우 큰 효과는 없다. 순간적인 인지도 상승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콩쿠르 준비가 아니라면 평소에 10곡 이상을 연습하기란 쉽지 않다. 기량 향상과 함께 스스로를 다잡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건 아니지만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밟아가다 보면 원하는 미래가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힘들고 고달프지만 그래도 열심히 연습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