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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결혼·이혼 공식 '알고리즘'으로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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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14.11.06 06:42:30

인간 삶에 스민 알고리즘 세계
호감상대 10m 들면 알림 앱 개발 MIT
이혼부부 패턴 표준화 서비스 美 회사
아마존은 구매이력으로 분석·광고까지
……………………………………………
만물의 공식
루크 도멜|336쪽|반니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사례 1. “북적거리는 실내에서 누가 나를 좋아할지 알아맞히느라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없습니다. 전화가 다 해줍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알맞은 짝을 찾으면 두 전화기가 알림음을 내며 블루투스 무선기술로 정보를 교환합니다. 나머지는 여러분 몫입니다.”

어느 정체불명 사이트에서 소개하는 즉석 만남인가. 아니다. 이 홍보문구는 미국 MIT 인간역학 연구진이 내놨다. 매력적인 상대가 10m 안에 들어오면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 연구진은 첨단의 이 휴대용 시스템이 온전히 ‘우연한 만남을 위해’ 개발됐다고 자랑한다. 그래서 이름도 ‘세런디피티’(Serendipity·뜻밖의 행운)다.

사례 2. 인간을 꽉 짜내면 남는 것은? 비누 석 장이란다. 인간이 자주 잊어버리는 것 중 하나가 인간은 결국 어떤 성분으로 이뤄졌다는 근본. 수분, 지방, 단백질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 덕에 인간은 분석되고 명쾌한 숫자로 포장될 수 있다. 이른바 자기수량화다. 여기에 적극 가담하는 이들을 셀퍼라고 부른다는데. 특이한 건 이들이 철학자 데카르트의 후예일 수 있다는 거다. ‘나는 측정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외쳐대니.

MIT의 세런디피티와 자기수량화의 셀퍼. 전혀 연관 없어 보이는 이 상황을 교묘히 조정하는 기제가 있다. 알고리즘(algorithm)이다. 알고리즘을 등에 업은 세런디피티는 ‘연애는 곧 기술’이라며 이렇게 설파한다. “기술이 데이트 방식을 바꾼다. 빨간 장미가 등장한 이래 기술은 수줍은 싱글이 낭만적 사랑을 만나는 최고의 수단!” 셀퍼는 또 어떤가. 올바른 기술과 적절한 데이터만 있다면 한 사람의 인생을 리포트 몇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분과 감정은 물론 정신건강까지 숫자화할 수 있다.”

도대체 알고리즘이란 게 뭔가. 탄생은 컴퓨터와 함께다. 단계별로 진행되는 명령 혹은 문제해결을 위한 수리적 규칙의 집합으로 정의된다. 쉽게 말해 매일 접하는 정보를 줄 세우고 솎아내고 가려내는 일이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컴퓨터 밖으로 뛰쳐나왔다면? 흔한 인터넷 검색뿐 아니라 오락, 연애, 결혼, 이혼, 법률에다가 영화, 음악에까지 관여한다면?

미국의 영화제작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그 현장을 잡아냈다. 알고리즘이 속속 배어 있는 사회와 일상의 낯익은 풍경을 펼쳐놓고 우리 삶이 누누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알고리즘에 얽혀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누군가 컴퓨터 모니터, 모바일 화면에서 주말 데이트 상대를 찾아냈다면 그건 그의 취향이 아니라 알고리즘의 선택이란 말이다.

▲“잠깐만요 알고리즘 바꿔드릴게요”

내친김에 리걸줌이란 기계도 들여다보자. 전직 회사법 변호사가 만든 자동문서조합시스템. 이 똘똘한 기계는 2001년 이래 200만명의 고객을 확보했다는데, 덕분에 웬만한 법무법인보다 유명한 브랜드가 됐다. 게다가 유언장 69달러, 회사정관 99달러란 ‘파격’으로 법조 업무를 야금야금 잠식 중이다. 기초적인 소비자·기업문서 작성엔 당연히 알고리즘이 작용했다.

알고리즘의 오지랖은 만남에 이어 이혼에까지 뻗쳤다. 위보스란 회사가 개발한 이혼서비스. 이들은 이혼 부부의 전형적 패턴 18가지를 잡아내 표준화된 서비스를 성사시키기에 이르렀다. 체계적인 절차로 이혼하는 부부의 두려움을 덜어주고 변호사의 효율을 높여준다는 것이 강점이란다.

소비패턴 분석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아마존은 구매 성향과 이력 등을 통해 소비자 분석은 물론 그들에게 광고까지 제공한다. 이젠 콜센터에 걸려온 전화로 고객을 분류하는 단계. “음” “어” 같은 사소한 감탄사, 말하는 방식, 구사하는 단어 등에 따라 담당 상담원이 바뀐다. 머지않아 “잠시만요 알고리즘 바꿔드릴게요”란 멘트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계 아니다 창의성이다

기대를 키우는 건 감히 상상할 수 없던 예술영역에까지 알고리즘이 파고들었다는 사실. 예측을 못해 ‘대박 아니면 쪽박’이라는 문화상품 흥행도 점칠 정도다. 가령 영국 에퍼고직사는 3007만여개의 평가기준을 통해 영화대본을 분석, 수익을 예측한다. 주인공의 성향, 확실한 악당, 신스틸러 같은 조연의 활약 정도에 따라 흥행이 갈린다는 거다. 최근의 정확도는 65% 이상. 할리우드 영화 각본 9편 중 6편의 성적을 정확히 빼냈단다.

창의성에까지 파고든 알고리즘의 진화는 질적 수준을 다듬는 단계다. 음악생성 알고리즘이 작곡한 곡이 유명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가 되고, 그림·조각 등의 진품과 위작을 판별하는 자동미술비평 알고리즘도 활약이 대단하다.

▲공평이냐 편견이냐

물론 알고리즘이 가치판단을 내리진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되레 여기에 있다. 객관성에 대한 확신 말이다. 과연 신봉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알고리즘이 모두를 공평하게 줄 세워 왜곡과 편견 없는 세상을 안겨줄 건가. 아니란 거다. 결국 운용하는 사람들의 편견이 관여하게 되기 때문. 알게 모르게 세상은 알고리즘이란 새로운 감시탑에 갇힐 가능성이 커졌다.

그럼에도 저자는 알고리즘 자체를 거부하는 건 답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 알고리즘의 시도를 방해하거나 끊어내는 전술을 개발하는 데 시간을 뺏기지 말란다. 차라리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불투명성 문제에 집중하라고 했다. 만물의 공식이긴 하지만 만능의 열쇠일 수는 없다는 뜻이다. 컴퓨터 안에 사는 기계나라의 언어만이 아니니 그저 편리에 빠져 영혼을 파는 실수는 하지 말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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