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하정민기자] 미국 상무부가 현지시간 17일 하이닉스(00660)반도체에 대한 상계관세 최종판정에서 44.71%의 관세를 부과키로 함에 따라 하이닉스 호의 앞날에 짙은 암운이 드리워졌다.
지난 4월 2일 미 상무부가 당초 예상인 30%대를 뛰어넘는 57.37%란 `초고율`의 상계관세 예비판정을 내리면서 어느 정도는 예고된 일이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방미 경제외교를 포함, 그간 정부가 꾸준히 관세율 하향을 위한 노력을 벌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업계 관계자들은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있다.
하이닉스의 대미 수출경쟁력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것은 물론 8월24일로 다가온 유럽연합의 상계관세 최종 판정에도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특히 예비판정 이후 하이닉스가 대미 직수출을 사실상 중단한 상황에서 유럽연합까지 막힐 경우 하이닉스의 수출길은 극도로 좁아지게 됐다.
최근 D램 가격이 바닥을 찍고 상승세를 나타내면서 애써 이어지던 하이닉스의 회생 노력에도 중대한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피해액 얼마나 되나..월 330억원 예상
하이닉스의 월 D램 생산규모는 약 7000만개로 이중 25%정도인 월 1700만개 가량의 D램이미국에 직간접적으로 수출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수출비중은 전체 수출물량의 각각 25%, 15% 정도를 차지하고있다.
44.7%의 상계관세가 부과된 하이닉스는 월 평균 270억원 정도의 예치금을 부담해야 할 전망이다. 여기에 유럽연합이 33%의 상계관세 예비판정을 부과함에 따라 현재도 월 60억원 정도의 비용부담이 있는 상태. 이를 더하면 매달 예치금으로만 납부해야 할 금액만 330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미국이나 유럽 쪽으로의 수출비중이 높다는 점도 문제지만 하이닉스가 최근 3년간 수조원대의 적자를 내고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규모를 떠나 `치명적`인 타격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이미 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에만 1조47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순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증권업계 한 애널리스트는 "수 조원의 누적적자에 시달리는 하이닉스의 재무구조를 고려할 때 매월 330억원에 달하는 비용 부담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며 "여타 수출거래선 확보 차질, 추가 자금조달 어려움 등으로 연쇄 타격이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미국과 유럽연합 쪽에서 상계관세문제가 잘 해결되면 대만과 일본업체의 상계관세 부과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 판정으로 이마저 어렵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이 문제를 제소키로 결정했지만 예비판정 이후 우리 정부의 주장이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따라 큰 희망을 걸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소극적 대처.."남의 일 보듯"
하이닉스는 미 상무부의 상계관세 최종판정이 힘의 논리를 앞세운 미국 반도체업계의 `하이닉스 죽이기` 일환이라고 평가하고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한국 정부의 대처능력이 크게 미흡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당초 노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하이닉스 문제가 구체적으로 거론될 것을 예상했으나 에번스 상무장관에게 통상적인 언급을 하는 수준에 그쳤다"며 "주무부처도 `보조금 무혐의를 입증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한 것에 비해 효과가 적지않느냐"고 비판했다.
또 "상계관세 부과는 단순히 하이닉스란 일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미간 통상문제의 핵심"이라며 "하이닉스의 수출이 타격을 입게되면 가뜩이나 적자행진을 지속하고있는 국내 무역수지를 더욱 악화시킬텐데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응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이어 "오는 8월에 있을 유럽연합의 최종판정에서도 두 자리 이상의 상계관세 부과가 확정된다면 하이닉스의 재정압박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정부는 유럽연합에 대해서라도 모든 통상·외교적 수단을 동원해달라"고 주문했다.
한편 하이닉스 내부에서는 지난해 실패로 끝난 마이크론과의 매각협상이 이번 사태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이닉스는 지난해 마이크론과 매각협상을 벌여 MOU까지 체결했지만 이사회 부결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 때 마이크론에 경영정보의 대부분을 공개했는데 협상 결렬 후 마이크론이 실사 정보를 활용해 하이닉스를 미국 정부에 제소,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주장이다.
◇하이닉스 "사업다각화, 유진공장 활용" 피해 최소화
하이닉스는 상계관세 예비판정 때와 마찬가지로 상계관세에 해당되지 않는 미국 오리건주 유진공장의 생산 극대화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올해까지 총 1억달러를 투자해 유진공장 생산라인을 강화하고 0.13㎛ 공정의 프라임칩 생산량을 늘린다는 것.
하이닉스 관계자는 "전체 D램 생산비중의 절반까지 확대할 계획"이라며 "해외업체와의 제휴도 늘려 플래시메모리, 유기EL 등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있다"고 강조했다.
하이닉스는 지난 4월 유럽 비메모리반도체 회사인 ST마이크로와 NAND(데이터저장)형 플래시메모리를 공동개발키로 합의했으며 영국 반도체설계업체인 ARM의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도입에도 합의했다. 지난 12일에는 차세대 비메모리 반도체인 유기EL(전계발광소자) 구동 집적회로(IC)를 최근 출시하고 7월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미국에서 주장하고있는 보조금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프로그램으로 이뤄졌고 금융기관의 상업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무역규제 조치로 마이크론 등이 일시적인 혜택을 입을지 모르나 결국 해외 D램 업체의 진입을 다시 초래, 관세 부과 이전과 동일한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구조조정 차원에서 지원된 채권단 자금을 정부 보조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 반도체산업을 고사시키려는 의도"라며 "여러 자구책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강력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