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 소설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는 그들은 한국어가 통번역이 특히 어려운 언어라며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영어 같은 경우는 앞부분에 하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놓고 뒤에는 수식어를 붙이는 방식이라 동시통역이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한국어는 마지막 한 마디로 앞부분의 이야기를 모두 뒤집을 수 있어서 끝까지 들어야 겨우 통역이 가능하죠. 그런 말도 있잖아요.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
한국의 콘텐츠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그래서 이제는 그 관심이 먹을거리부터 패션, 여행 등 한국문화로까지 옮겨가는 추세인데 거기에는 한국어에 대한 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거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한국어 간판들이 지저분하게만 보이지만 외국인에게는 그것이 그토록 멋스럽게 느껴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 한국을 로케이션으로 작품을 찍는 외국감독들은 카메라를 드리우면 골목 하나도 다 그림이 된다는데 거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한글의 아름다움이다. 한국말도 마찬가지다. 한국말 가사 그대로 BTS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물론 작품 자체의 뛰어난 성취가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는 한류로 인한 한국문화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도 어느 정도는 일조한 면이 있다. 그리고 그 한류의 흐름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한국전쟁 이후 비교적 짧은 시기에 놀라울 정도로 변화와 성장을 거듭해온 그 과정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 또한 들어 있다. 최근 한국 콘텐츠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건 한 국가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약 40년간 압축적으로 겪은 서사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그의 저서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 과정(인류 문명사의 과정)을 정확하게 압축 재현했다’며 ‘생리적 욕망의 충족을 도모하는 데서 출발해 안전, 자유, 존엄이라는 차원 높은 욕망 충족을 향해 나아갔다’고 말했다. 이 말은 전쟁 후 반공국가, 경제발전, 민주화, 사회정의와 인권을 차례로 요구해온 대한민국의 변화과정을 말하는 대목이다. 이 각각의 욕망은 현재에도 여전히 공존하면서 사회의 다양한 문제의식들을 만들어내는데 콘텐츠들이 이걸 다양하게 담아냄으로써 보다 폭넓은 글로벌 공감대가 가능해졌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성장서사의 로망을 담은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지만 동시에 양극화 문제가 고도화된 서구권 국가들은 이 문제들을 담은 사회비판적인 콘텐츠들이 인기를 끈다. 한국은 실로 성장과 분배, 경쟁사회에 대한 애증, 속도와 느림, 디지털과 아날로그 같은 이율배반적인 것들이 뒤섞여 있는 나라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건 이러한 한국이 역사적으로 겪어온 아픔과 상처들을 온전히 자신 속으로 끌어안아 문학으로서 품어냈기 때문이다. 그건 그래서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담은 이야기지만 욕망의 단계에 따른 저마다의 문제에 봉착해 있는 전 세계인 또한 공감하게 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강 작품들은 국내 출판가에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수상 이후 닷새간 종이책만 97만2000부가 팔렸고 베스트셀러 10위권을 모두 한강의 작품이 채웠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국내 출판가에도 기대감을 만드는 모양새다. 최근 ‘텍스트 힙’이니 ‘독파민’이니 하는 새로운 독서 트렌드에 대한 관심 또한 커졌다. 지금이 다시금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제고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물론 이러한 쏠림현상이 인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저변을 넓힐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책과 독서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는 건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개발시대의 압축성장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했다면 최근 한국 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을 제2의 ‘한강의 기적’이라고 한다. 중의적인 표현이지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통한 또 한 번의 ‘한강의 기적’을 기대한다. 인문학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 문화의 깊이가 피어나는 기적 같은 일들이 생겨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