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은 분들이 왜 그러시나요? 예비군 훈련장만 오면 다 똑같아지는 것 같아요. 교관 통제를 무시하기 일쑤고, 줄도 삐딱하게 서시고 ...”
올챙이 기자 시절의 어느 날. 직장 단위 예비군들을 모아 교육시키는 서울 인근 부대에서 겪은 경험은 뜻밖이었다. 법원·검찰과 금융 기관들이 밀집해 있던 서울 도심의 직장 예비군은 30대의 화이트 칼라 남성을 한데 모아놓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았다. 부대 입장에서는 그래도 법조계 인사들이 다수 섞여 있는 이들 직장 예비군이 다른 업종 종사자들보다 지휘하기 쉽고 통제에 잘 협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농담반 진담반’이긴 했어도 교관의 입에서 그런 탄식과 푸념이 쏟아지다니...
‘점잖은 분들’에 실망한 예비군 교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쓰이는 옛 대법원 청사 앞을 지날 때였다. 그리고 이 날은 ‘제국의 위안부’ 저자인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기도 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형사고발 당한지 9년 4개월 만의 일이며 상고심만 놓고 보면 6년 만의 판결이었다. 노정희 대법관이 주심을 맡은 재판부가 무죄 취지의 파기 환송 결정을 내렸지만 10년 가까운 세월을 송사에 시달린 박 교수의 몸과 마음이 어떤 상태였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박 교수는 판결 3개월여 전 한 시인과 가진 인터뷰에서 “내 삶을 내가 계획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고통”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상식적인 판결마저도 질질 시간을 끌다 뒤늦게 결정을 내린 사법부의 무책임이 안긴 고난과 아픔을 짐작케 하는 단서다.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문이 있으나마나 한 구절로 전락한지는 이미 오래다. 박 교수의 사례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입시비리로 기소된 조국 전 서울대 교수의 경우 1심 선고까지 3년 2개월이 걸린 데 이어 지금도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문재인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 개입 사건은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도 1심 선고가 내려지지 않았다. 윤미향 의원의 정의연 기부금 횡령 재판은 기소 후 3년이 지난 9월에야 2심 판결이 났다. 엄연한 재판 늑장이자 직무유기다. 법관들이 스스로 법을 무시하고 우습게 아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는 비판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박 교수가 개인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은 것이었다면 조국 전 교수나 울산시장 선거 재판은 사회 정의가 우롱당하고 헌법 정신이 훼손됐다는 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지각 재판의 하이라이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소송이다. 그는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비리 등의 혐의로 4가지 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어떤 사건도 1심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버젓이 내년 총선을 지휘할 것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노골적 꼼수 등 사법 방해 전략이 먹히기도 했지만 재판 지각, 불출석 등 법원을 얕잡아보는 그의 행태 앞에서도 법관들이 제지는커녕 눈치를 보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의 여신상이 눈을 가린 이유는 누구든 똑같은 잣대로 심판하고 정의를 구현한다는 의미라지만 우리의 법조계 정의는 권력 앞에서 눈감았다고 해야 옳을 정도다.
도필리(刀筆吏)는 고대 중국에서 죽간의 글에 오탈자가 났을 때 글자를 칼로 긁어내 삭제하는 일을 맡은 하급관리들이었다. 사마천은 법률을 교묘하게 적용해 사람들을 곤경에 빠지게 하는 작자들이라 높은 벼슬에 앉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사기’(급정열전)에서 남겼다. 엘리트 중 엘리트라는 서초동 법관들 중 “도필리와 뭐가 다르냐”는 비난 앞에서 “말이 되느냐”며 분노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지각 재판, 눈치 재판이 만연한 오늘의 한국 법조계야말로 도필리가 판치던 옛날 중국과 다를 게 없다는 게 기자만의 생각이면 다행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