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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라면값 내리라" 부총리 발언이 부적절한 이유

정병묵 기자I 2023.06.19 06:12:00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라면값 인하’ 발언이 구설을 빚고 있다. 생필품 가격이 전방위적으로 오른 상황에서, 특정 업계에 가격 인하를 압박하는 것 같은 요구가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 온당한 것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추 부총리는 18일 한 지상파 프로그램에 나와 물가 안정 대책을 설명하면서 “지난해 9~10월 (라면값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면서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정부가 하나하나 원가를 조사하고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 문제는 소비자 단체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고도 했다.

실제 라면 가격이 급등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 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4월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24.04로 작년보다 13.1%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인 2009년 2월(14.3%) 이후 14년 3개월 만에 최대 인상률이다.

대표 서민 먹거리인 라면을 언급해 물가 안정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지적 포인트부터 잘못됐다. 라면 업체는 제분 업체에서 밀가루를 공급받는다. 국제 원맥 가격이 하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원맥을 가공해 밀가루를 만드는 공급사를 두고 소비재 제조사더러 가격을 내리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 밀 외에 전분, 각종 야채류 등 라면을 구성하는 주요 원재료 가격도 급등한 상태다.

전방위적 물가 상승은 온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만 압박한다고 물가가 잡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품목을 콕 찍어 ‘가격을 내렸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식의 발언은 적절치 않다. 특히 ‘소비자 단체 압력 행사’ 같은 말은 관치경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위험한 발언이다. 더구나 작년 수출액 7억달러를 처음 돌파하면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는 ‘효자 품목’으로 자리매김한 우리 라면 산업의 사기를 꺾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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