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점심식사 자리에서 월드컵 ‘죽음의 조’ 1위를 차지한 일본(피파랭킹 24위)이 화두에 올랐다. 독일(11위)에 이어 스페인(7위)까지 두 우승 후보를 꺾었지만 정작 수월한 승리를 예상한 코스타리카(31위)에는 패배의 굴욕을 맛본 일본을 두고 “스포츠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확실히 스포츠의 묘미는 불확실성이긴 하지만 이번 일본 성적표를 운이나 우연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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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일본은 이번 월드컵에서 최초 기록을 새로 썼다.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두 대회 연속 16강에 진출하면서다. 한국도 아직 세우지 못한 기록이다. 그 뒤에는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일본의 길을 가겠다는 ‘재팬스 웨이(Japan’s Way)’가 있다.
월드컵 우승을 향한 일본의 집념은 꽤 진지하다. 비록 프로리그 출범은 1993년으로 한국보다 10년 늦었지만 2050년에는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축구 관련 인구를 1000만명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탄탄한 체제와 상당한 수준의 프로리그 재정이 국가대표 강화와 청소년 육성, 지도자 양성을 뒷받침한다.
재팬스 웨이는 일본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아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지난 7월 일본축구협회(JFA)가 발간한 재팬스 웨이에는 “일본이 체격과 힘에서 뒤진다면 기술과 집요함, 페어플레이로 만회하면 된다”고 적혀 있다. 축구 강호 유럽 선수들보다 피지컬에서 밀려도 기술로 극복하겠다는 의지다. 피지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술 공격과 수비 기술, 멘탈, 몸싸움 때 요구되는 능력도 상세히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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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신체적 강점을 가진 선수들의 강점이 팀을 만든다”는 재팬스 웨이를 보다 보면 종목은 다르지만 작년 도쿄올림픽에서 ‘신장 아닌 심장으로 하는 농구’를 증명해 보인 일본 여자농구팀을 연상케 한다. 평균신장 176cm로 출전 국가 중 뒤에서 두 번째로 작은 일본 대표팀에서도 162cm로 유난히 작은 포인트가드 마치다 루이가 올림픽 여자농구 역사상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준우승을 이끌었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닐 터다.
선수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대목도 눈에 띈다. 재팬스 웨이는 일본 축구가 원하는 선수상을 두고 “자신의 개성을 무기로 어떤 감독이나 시스템, 전술 하에서도 팀을 위해 자신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라고 명시했다.
그래서일까. 일본 국가대표 팀은 에이스 한 명만 바라보기 보단 유럽파 3명이 조별리그에서 4골을 터트리면서 독일에 이어 스페인까지 꺾을 수 있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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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구에서 약한 부분으로 여겨졌던 수비 역시 이번 독일전에서 한층 강화했다. 1990년대 유럽을 대표하던 독일 국가대표 수비수 기도 부흐발트는 지난 1차전에서 일본이 독일에 2대1 역전승을 거두자 “수비수뿐 아니라 팀 전체적인 수비가 굉장히 좋아지고 있다. 일본의 실점이 얼마나 적은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패배를 받아들이는 축구 팬들의 태도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보다 피파랭킹이 낮은 코스타리카에 패배하자 JFA 초대 회장인 가와부치 사부로는 사죄 트윗을 올렸다. 독일과 맞붙었을 때의 전투력은 간 데 없고 코스타리카전에서는 끌려다니는 축구로 실망시켜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초대 회장의 ‘도게자(사죄를 뜻하는 일본 표현)’에 일본 축구팬들은 “사과할 정도의 축구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축구는 어차피 100년 구상 아닌가. 아직 3분의 1도 지나지 않았다”며 일본 선수단을 격려했다. 지난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이 좌절된 한국 국가대표팀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자 손흥민이 계란 테러를 받은 모습과는 대비된다.
월드컵도 우리 삶처럼 늘 예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흘러간다. 독일이 2개 대회 연속 16강 진출이 좌절되고, 죽음의 조에 포함됐지만 쫄기는 커녕 월드컵 8강에 갈 것이라는 일본의 장담처럼 말이다. 일본이 크로아티아를 물리치고 한국이 브라질을 상대로 승리한다면 한국과 일본은 월드컵 본선 8강에서 맞붙게 된다. 본선 진출과 동시에 세계 최강 브라질과 붙는다는 사실에 위축될 수 있는 이 시기, 우승후보 포르투갈전을 앞두고 밈(meme) 으로 급부상한 표현이 떠오른다. 알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