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허락해야 보이는 '헤일로'…로보틱기술 만난 미술

김은비 기자I 2021.07.05 06:00:00

''다원예술2021: 멀티버스'' 네 번째 프로젝트
99개 로보틱 거울이 물안개로 햇빛 반사
가상현실·인공지능 활용한 작품들 선봬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보인다, 보인다.” 지난 1일 국립현대미술관 앞마당에 모인 관람객들이 일제히 외쳤다. 구름 사이에 가려졌던 햇빛이 나오면서 허공의 뿌연 물안개들 사이로 둥그런 링 형태의 작품 ‘헤일로’(Halo)가 모습을 드러내면서다. 로보틱 기술을 활용한 작품은 둥그런 궤도를 움직이는 99개의 로보틱 거울이 물안개로 햇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맑은 날씨에서만 눈으로 볼 수 있다. 태양·바람·수증기 등 자연이 허락하고, 관람객이 기다려줘야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아무 때나 볼 수 없는 작품인 만큼 관람객들은 사진을 남기고, SNS에 인증하는 글을 올리며 감상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다원예술2021:멀티버스’의 네 번째 프로젝트로 선보이는 김치앤칩스의 ‘헤일로’(Halo), 로보틱 거울모듈 등(사진=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은 ‘다원예술 2021: 멀티버스’의 네 번째 프로젝트로 미디어아트그룹 김치앤칩스의 ‘헤일로’(2018)와 신작 ‘응시’, 안정주·전소정 작가의 ‘기계 속의 유령’ 설치 영상을 선보인다. 다원예술은 미술관이 2017년부터 선보인 융복합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멀티버스’를 주제로 가상현실, 인공지능, 드론과 같은 최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다양한 기술을 활용한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는 물론 예술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치앤칩스의 신작 ‘응시’는 왜곡이 없는 실제 내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다. 거울은 빛의 굴절로 인해 왜곡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실제에 근접한 모습을 비추기 위해서 빛의 굴절이 거의 없이 형상을 반사하는 거울 장치(Front Silvered Mirror)를 제작했다. 로보틱 플랫폼에 의해 움직이는 두 개의 전면 거울과 빛의 개입이 만드는 시간과 공간의 확장 안에서 관람객은 거울 속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스스로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관람객은 응시의 주체와 대상 사이를, 주인공과 관찰자의 시점 사이를, 찰나와 무한대의 시차 사이를 오가며 무한한 자기 복제를 경험하게 된다.

안정주·전소정 작가는 자율주행드론을 활용한 작품 ‘기계 속의 유령’으로 비대면이 일상화되는 시대에 새로운 감각에 대해 실험했다. 두 종류의 드론을 활용한 설치, 영상 작품 다섯 개를 한데 모은 작품은 사람이 무대에서 연극을 하듯 각 작품이 자신의 역할을 한다. 상승과 추락을 반복하는 공기주머니, 어항 속 물고기, 선풍기에 흩날리는 테이프 등 구조물 사이에 설치된 CCTV 카메라까지 이들은 기계지만 인간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듯 실시간으로 영상을 송출하고 변환·전송을 반복하며 인공지능 시대에 사물과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여기에 한강 밤섬과 미술관 내부를 가로지르는 경주용 드론은 우리가 직접 가지 못한 밤섬의 감각을 직접 방문한 것처럼 전하며 전시장 내에 자연의 모습을 인공적으로 복원하기도 한다. 전소정 작가는 “‘기계 속의 유령’은 미술관의 보이지 않는 공간과 신체가 닿을 수 없는 장소를 배회하는 기계장치이자 일종의 유령”이라며 “인간 감각의 한계를 실감하게 하고 새로운 감각의 개입을 요구했다”고 작품 의도를 소개했다.

‘헤일로’, ‘응시’와 ‘기계 속의 유령’은 각각 오는 9월 24일과 8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감상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다원예술2021:멀티버스’의 네 번째 프로젝트로 선보이는 안정주, 전소정 작가의 ‘기계 속의 유령’(2021), 드론·설치·단채널비디오 (사진=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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