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양천구 분식집 상인 A씨는 김치를 남기고 가는 손님에게 밥값을 받으려니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중국산 김치를 쓰는 이 가게는 이른바 ‘알몸 배추’ 파동이 일고서 이런 손님이 늘었다고 한다. 중국산 김치를 피하려는 심리가 식당을 꺼리는 데까지 이어지지 않을지 A씨는 우려한다. 그는 “국산 김치는 비싸서 못 쓴다”고 했다.
◇ 국산김치 얼마죠?…못 먹는 감 찔러보기만
외식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중국산 김치를 쓰는 식당을 중심으로 매출 감소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언론 보도를 통해 중국산 김치에 대한 위생 논란이 일어난 데 따른 반응이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상의를 탈의한 채로 배추를 씻어 절이는 장면이 일반에 공개된 것이 치명타였다.
이로써 외식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현실화한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김치찜을 주력으로 하는 상인은 “중국산 김치가 논란이 일고서 매출이 절반 줄었다”고 호소했다. 배달 음식에 중국산 김치를 반찬으로 달려 보냈다가, 항의 전화와 ‘별점 테러’를 받은 상인도 등장했다. ‘중국산 김치 사절’ 요청 사항을 실수로 간과한 탓이었다. 현재 특히 중국산 김치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얼마나 예민한지를 드러낸다.
그간 중국산은 외식업에 쓰이는 김치 시장을 지배해왔다. 한국식품과학회 ‘식품과학과 산업’(작년 6월호)을 보면, 2018년 기준 외식·급식 업체 약 70%가 외국산 김치를 사용했다. 국내 수입 김치 99%가 중국에서 들어오는 걸 고려하면, 중국산 김치 없이는 식당 열에 일곱은 영업에 차질을 빚는 처지다.
이 상황을 벗어날 근본적인 해법은 김치 국산화다. 김치찌개 전문점 상인은 “국산 김치로 재료를 바꾸고 매출이 예전만큼 회복했다”고 전했다. 국내 최대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에 원산지 표기를 국산으로 바꿔서 손님 이탈을 막았다고 했다. 상인이 임의로 하는 것이라서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실제로 김치 제조·유통사에는 이달 들어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국내 수위권 식자재 유통사 B사 관계자는 “중국산 김치를 공급받아온 고객들로부터 제품 안전성을 문의하는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김치 제조 규모로 국내 상위권에 드는 C사 측은 “외식사업부 쪽으로 김치 견적 신청이 증가했다”며 “대부분 중국산 김치를 쓰다가 국산화를 고려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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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부분 간을 보는 선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 B사와 C사에 중국산 김치를 국산으로 바꾸고자 문의를 넣은 상인 가운데 실제로 실행에 옮긴 사례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B사 관계자는 “가격 탓에 발을 구르는 상인에게 우수 수입 업체 인증서와 HACCP(Hazard Analysis and Critical Control Point) 인증서를 인쇄해 영업장에 붙여둘 것을 조언하는 정도에서 통화를 마무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용이 문제다. 상품과 상태별로 다르지만, 배추김치 기준으로 중국산보다 국산이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6배까지 비싸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실제로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 김치 1t당 가격은 542달러(61만원)이고 수출 김치 1t 값은 3635달러(412만원)였다. 둘의 가격 차이(6.7배)를 보면 상인의 심정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서울 시내 백화점의 한(韓)식당에서 만난 관리자는 국산 김치로 영업하는 데 대해 “백화점 고객은 가격 저항이 약한 편이라서 가능한 일”이라며 “음식 값을 외부보다 높게 받지 못한다면 국산 김치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산 김치 기피 현상을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봐야 하는지 단언하기도 어렵다. 최대 관건은 국산 김치를 쓰려면 가격 상승에 대한 저항을 이기는 것이다. 가격을 올리고 논란이 사그라져도 떠나간 고객이 돌아오리란 보장이 없다. 상인의 셈을 복잡하게 하는 변수는 불가항력이라서 의사결정이 쉽지 않다.
앞서 분식집 상인 A씨는 “김치 가격이 그래 봤자 반찬 값 정도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김치를 국산으로 바꾸면 밥값은 앞자리(1000원 이상)를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 당장 고통이지만 ‘국산 공감 찾아서’
김치의 국산화에 지친 자영업자는 대체재를 찾아 헤매고 있다. 국산 배추김치 대신 국산 무를 활용한 찬을 제시하는 식당이 늘고 있다. 깍두기나 무채, 열무김치가 대안으로 꼽힌다. 다행히 지난달 무 가격(20kg)은 전년 동월보다 20% 하락해 상인의 시름을 달랬다.
다만 대증요법이라서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앞선 조사에서 외식·급식업체가 2018년 소비한 김치 가운데 80%(53만t)가 배추김치였다. 배추김치가 부식재료(반찬)를 넘어 주식재료(찌개, 찜 등)로까지 쓰이는 비중이 압도적이라는 의미다.
중국산 김치 기피 현상이 국산 김치 수요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이번 우려를 국산 김치를 늘려가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전기일 수 있다.
국산 김치 제조회사 관계자는 “가격차라는 큰 장벽이 있어서 단기간에 반사이익을 누리기는 어렵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중국산 김치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치 위생에 민감한 소비자가 비싼 가격을 감수하려는 쪽으로 인식 전환이 이뤄지면 국산이 보편화할 수 있다”는 기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