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과중 업무·폭언 스트레스로 숨진 경비원…업무상 재해 맞다"

하상렬 기자I 2021.03.22 06:00:00

관리비 절감 위해 인원 감축…업무 증가, 입주민 폭언도
法 "업무상 과로·스트레스가 질병 유발"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과중한 업무·폭언 등의 스트레스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아파트 경비원에 대해 업무상 재해가 인정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사진=이데일리DB)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는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판결했다.

경북 구미시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A(73)씨는 2018년 9월 의식을 잃은 채 경비실 의자에서 앉아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A씨는 즉각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A씨 배우자는 공단에 A씨에 대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신청했다. 그러나 공단은 이듬해 7월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내렸다. A씨가 업무적 요인이 아닌, 개인적 위험요인으로 사망해 업무와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불복한 A씨 배우자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씨 배우자의 손을 들어줬다. 업무상 과로·스트레스와 A씨의 사망 사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법원은 A씨가 사망 무렵 관리소장의 퇴직으로 관리소장이 담당하던 업무 중 상당부분을 추가로 부담한 점을 고려했다. A씨가 근무하던 아파트는 관리소장 1명과 경비원 2명이 관리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2018년 4월경부터 관리비 절감 목적으로 관리소장으로 퇴직했고, 관리소장 퇴직이후 관리소장이 전담하던 업무는 나머지 경비원 2명의 업무로 추가됐다. 관리소장 업무는 경비원 2명에게 균등하게 분배되지 못했다. A씨는 2009년부터 이 아파트에서 근무한 반면, 나머지 경비원 자리는 근무태만이 잦는 등 자주 교체됐다. 이에 따라 관리소장 업무는 A씨 쪽에 더 많이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법원은 A씨가 이중 주차 문제로 입주민에게 폭언 등을 들은 사실이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 사망 일주일 전 A씨가 이중주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입주민에게 폭언을 들은 것이다. 이 사건 아파트는 주차면수가 116대인 반면, 등록 차량이 235대로 주차면수에 비해 등록차량이 많아 주차관리에 어려움이 있어 주민 간 갈등이 빈번했다.

재판부는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 관계가 없더라도 업무상의 과로·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 질병을 유발·악화시켰다면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며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 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돼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한 경우도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9년부터 같은 아파트에서 근무해 약 9년 이상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던 A씨가 관리소장 퇴직에 따라 업무가 추가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 입주민과 주차 갈등을 겪은 후 사망한 것에는 직무의 과중·스트레스가 원인이 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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