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각]①문명·물류·에너지의 원천 '물'

김무연 기자I 2020.07.21 04:00:00

지상 강의 : ‘인더스토리’ 9강 물(水)
생명체를 구성하는 제1의 요소이자 가장 오래된 에너지의 원천
4대 문명은 모두 강 유역에서 시작, 화력·원자력 발전에도 쓰이는 물
페르시아제국, 수에즈 운하 건설…로마제국, 상·하수도 기반 강대국으로
수에즈 운하 놓고 제2차 중동전 발발…운하와 권력은 필...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 ‘인더스토리’(INDUSTORY
)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 등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

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인더스토리’ 물(水)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권승현 PD, 정리=김무연 기자]“식물의 90%는 물이다.”

임규태 박사는 이 단순한 사실로부터 인류 문명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식물을 한곳에서 대량으로 경작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물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였다. 역사에 기록된 4대 문명은 모두 강 유역에서 출발했다.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 유역에서, 황허 문명은 황허강 유역에서 싹텄다.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 강 인근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유프라테스 2개의 강을 두고 성장했다.

인류에게 물은 생명 활동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물질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류는 물길을 이용해 대량의 물자를 운반하는 물류 혁명을 이뤘고, 다른 문화와 교류 할 수 있었다. 근현대에 들어 인류는 물로부터 대량의 에너지를 얻고 있다. 우리가 흔하게 사용하는 물은 인류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생활·문화·산업 전반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다리우스 1세가 건설한 수에즈 운하.


◇ 권력과 ‘수로’(水路)…두 제국을 탄생시키다

기원전 550년 탄생한 페르시아 제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현한 중동 지역에 터전을 잡았다.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를 연 키루스 2세는 재위 당시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의 대부분을 정복하고 인도까지 진출했다.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를 복속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3대 문명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그 뒤를 이은 다리우스 1세는 이집트의 자가지그에서 수에즈로 이어지는 운하를 건설해 홍해와 나일강을 연결했다. 나일강은 지중해와 연결되기 때문에 대륙으로 분단됐던 홍해와 지중해가 뱃길로 연결된 것이다. 다리우스 1세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도 성공하지 못한 대역사를 자신이 성공한 것을 자랑하는 비문을 곳곳에 세워 자신의 공로를 널리 알렸다.

고대 수에즈 운하는 단순히 물류 혁명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자신들이 정복한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고 융합하는 다민족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임 박사는 “정복 지역을 수로로 연결한 수에즈 운하 덕분에 페르시아는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고 융합하는 새로운 문명을 창출하는 기틀을 닦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로마 시대에 건설된 폰 뒤 가르 수도교.
운하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했다면 상수도와 하수도는 로마 제국을 융성시켰다. 기원전 312년 로마 공화정의 재무관이었던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로마에 수로를 건설하는 대사업을 시작한다. 로마는 발달한 건축 기술로 중력 낙차를 이용해 계곡으로부터 도시로 물을 끌어들이는 수도교를 건설하는가 하면 시내에 납관을 설치해 가정까지 연결하는 배수로를 설치했다.

로마는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넘어가는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수로 건설을 멈추지 않았다. 226년 로마를 포함 200여개 도시에 식수를 공급하는 총 길이 400㎞의 수로가 완성됐다. 상수도를 건설한 아피우스보다 앞선 기원전 500년 로마인들은 하수도 정비 사업을 진행했다. 이때 건설한 하수도인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는 현재에도 사용 중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니시우스는 “위대한 로마는 상수도, 포장도로, 하수도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임 박사는 “시민 누구나 물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한 로마의 상하수도는 로마가 오랜기간 동안 정치적 안정을 누리면서 강대국으로 남을 수 있는 정치력의 원천이었다”고 말한다.

수에즈 운하를 건설한 페르디낭 드 레셉스
◇ 신항로에 대한 강대국의 집착…운하를 넘어 북극까지

1798년 이집트를 점령한 나폴레옹은 다리우스 1세가 건설한 고대 수에즈 운하에 주목했다. 마젤란이 세계 일주로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아시아와 유럽으로 연결하는 항로를 개척했지만,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다면 홍해를 통해 곧바로 유럽으로 물류 운송이 가능해진다. 나폴레옹은 수에즈 운하 재건을 지시했지만, 측량기사의 해수면 측정 실수로 그의 꿈은 무산됐다.

수에즈 운하의 재건이라는 나폴레옹의 꿈은 1869년 프랑스 외교관이자 기술자였던 페르디낭 드 레셉스에 의해 이뤄진다. 레셉스의 활약 덕분에 수에즈 운하의 운영권은 건설국인 프랑스와 땅 주인인 이집트가 공동으로 소유하게 됐다. 영국은 애초 수에즈 운하 건설에 비관적이었지만, 운하 개통 후 가장 큰 고객이 된다. 수에즈 운하 운영권에 눈독을 들이던 영국은 이집트 정부가 금융위기에 봉착하자 이를 지원하는 대가로 수에즈 운하 운영권을 할양받아 프랑스와 공동 운영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1908년 영국이 이란에서 중동 최초로 석유 채굴에 성공하면서 수에즈 운하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중동에서 채굴한 석유가 수에즈 운하를 통해 직접 유럽에 수입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하지만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하고 이에 반발해 아랍에서 아랍 사회주의가 확산한다.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은 정권을 잡자마자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영권을 되찾기 위해 이스라엘과 함께 제2차 중동전을 일으킨다.

가말 압델 나세르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사태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서구의 신흥 강국 미국과 사회주의의 리더인 소련은 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태를 우려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과 소련의 외교적 압박으로 군사를 물려야 했다. 임 박사는 이 사건을 “미국-소련 양강 중심의 냉전 체제가 공고화한 계기”라고 평가하면서 “그 배경에 운하 운영권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수에즈 운하를 성공적으로 개통한 레셉스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눈을 돌렸다. 북·남미를 잇는 파나마 지역에 운하를 개통하면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물류 혁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사 도중 말라리아 창궐로 인부 2만2000여명이 죽어나가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레셉스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파나마 운하 건설에 미국이 나서면서 10년의 난공사 끝에 1914년 운하 개통에 성공한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원래 콜롬비아 영토였던 이 지역을 파나마로 독립시킨다.

하지만 미국과 파나마의 밀월은 영원하지 않았다. 1989년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한다. 파나마 대통령 마누엘 노리에가의 마약 밀매, 공갈, 돈세탁 혐의를 처단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노리에가가 추진한 파나마 운하 국유화가 미국이 군사행동에 나선 주된 이유였다. 미국은 약속대로 1999년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반환하지만 반환 기념식에 미국 측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부산을 출발해 북극 항로를 거쳐 독일에 닿은 머스크의 컨테이너선.
물길을 찾는 인류의 노력은 극지방까지 이어졌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쇄빙선 없이도 북극 항로를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2018년 8월 부산에서 출발한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Maersk)의 컨테이너선이 북극 항로를 따라 독일 브레머하벤 항에 25일 만에 도착했다. 수에즈 항로를 이용할 때보다 16일을 단축한 물류 혁신을 실제로 증명한 것이다.

임 박사는 “인간은 거대한 변화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지구 온난화도 그 중 하나다”라면서도 “북극 항로의 사례처럼 거대한 변화는 새로운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고 위기에 대응하는 전향적인 자세를 강조했다.

윌리엄 암스트롱
◇ 물은 에너지의 원천

물은 인류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에너지 원천이다. 흐르는 물을 동력으로 활용한 물레방아는 고대부터 존재했다. 전쟁사에서 암스트롱포 개발자로 알려진 영국의 윌리엄 암스트롱은 노섬벌랜드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 크랙사이드의 갤러리를 전구로 밝히는 방법을 연구한다. 1878년 그는 저택 앞에 흐르는 개울물을 물레방아로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데 성공한다. 그가 크랙사이드 저택에 설치한 이 장치가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수력발전소다.

미국 위스콘신주 애플턴에 세워진 수력 발전소
전구를 매개체로 전력망을 철도망처럼 전국에 깔려 했던 토머스 에디슨도 발전소 건설에 몰두한다. 그는 뉴욕에 화력발전소를 세우는 한편 1882년 위스콘신에 수력 발전소를 건설했다. 물레방아를 이용한 간단하고 직관적인 구조로 설치가 용이한 수력 발전소는 그 후 7년 동안 미국 전역에 200개가 세워진다.

뉴욕 마천루 건설을 시작으로 도시의 대형화가 일어나면서 수력 발전소만으로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화력 발전소가 대세가 된다. 하지만 화력발전소도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든 뒤 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하기 때문에 물이 없으면 화력발전소는 존재하지 못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원자력 발전소가 등장했지만, 전력 생산 메커니즘은 화력 발전소와 같다. 단지 불 대신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열을 사용할 뿐이다. 그 열로 물을 끓여 증기를 만든 뒤 터빈을 돌려 전력을 생산한다.

미래 에너지 시장에서도 물의 영향력은 지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 세계 과학자들은 ‘인공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 원자로 개발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소련의 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제안한 ‘토카막’으로 2억도에 달하는 핵융합으로 발생하는 플라스마를 가두는 데 성공했지만, 또 다른 장벽이 존재한다. 인공태양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핵융합을 일으키는 주 연료인 이중수소와 삼중수소를 다량으로 구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그 답을 물에서 찾았다. 바닷속에서 인류가 사용하고도 남을 만큼의 이중수소와 삼중수소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임규태 박사가 서울 중구 순화동 KG하모니홀에서 ‘위대한 생각’ 지상 강연 ‘인더스토리’ 물(水)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노진환 기자)
◇‘위대한 생각’은…

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 이데일리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획했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이데일리TV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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