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함정선 기자] 정부는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종합대책을 내놓곤 한다. 최근에만 해도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폭력 종합근절대책이, 이천 화재 사건으로 건설현장 안전대책이 발표되기도 했다.
종합대책이 사건을 말 그대로 근절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그나마 한숨을 돌린다.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한 발이나마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위안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8월까지 발표하겠다고 밝힌 아동학대 종합대책에 대해서는 그 어떤 기대와 위안도 생기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정부가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기는 한 건가 싶은 무력감마저 느낀다.
정부가 아동학대 종합대책 마련에 나서는 것은 최근 잇따라 발생한 사건이 불씨가 됐다. 천안에서는 9세 아이가 여행 가방에 갇혀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고, 창녕에서는 역시 9세 아이가 학대를 견디다 못해 4층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충격적인 사건이기는 하지만 이 같은 아동학대는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이기도 하다. 2016년에는 36명, 2017년에는 아동학대로 38명의 아이가, 2018년에는 28명의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 한 달에 2~3명의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겪고 있는 셈이다.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대부분이 가정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동학대 사망사건 중 충격적이지 않은 사건은 없다. 아이들이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아이들을 가장 보호해야 할 부모와 가족 등이 어린 아이들을 죽음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정부 역시 아동학대의 실태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정부는 그동안 크고 작은 아동학대 대책들을 꾸준히 만들어 왔다.
천안과 창녕 아동학대 사건 발생 후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는 종합대책이 마련되기 전에 우선 만 3세 아동과 취학 연령 아동의 소재를 확인하는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이 전수조사는 사실 올해 2월 이미 한차례 완료된 정책이다.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가 경찰청과 함께 미취학 아동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고 올해 2월 그 조사가 완료됐다.
이 때문에 8월 종합대책도 정부가 그동안 진행해온 대책과 계획을 한곳에 모으는 선에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위기 아동을 발굴하기 위한 전수조사, 재확대를 막기 위해 학대 이력이 있는 가정 관리 강화, 아동학대 처벌 강화, 아동 보호시설과 관련 전문가 확대와 같은 것들 말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의 아동학대 방지 또는 근절 대책으로는 위기 아동을 구해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목숨을 잃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재학대 아동이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가정이 아이들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다시 학대를 당한다. 그동안의 정책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아동학대도 결국 가정 내 일인데 이렇게까지 국가가 개입해도 되나’ 싶을 만큼의 획기적이고 충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이를테면 부모가 엄격한 교육과 상담 등을 통과하지 않으면 아이를 절대 집에 돌려보내지 않는다든가, 아동학대의 조짐만 보여도 누구든 신고할 수 있고, 경찰이 최우선으로 조사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껏 그랬듯 또다시 아동학대로 목숨을 잃거나 고통받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마주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