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호의 PICK]58년 연기인생, 아낌없이 무대로

장병호 기자I 2020.02.10 00:30:00

박정자 1인극 ''노래처럼 말해줘''
1962년 데뷔 이후 매년 무대 올라
무대 위 배우의 삶 파노라마로
"내겐 아직 부를 노래 많이 남아"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대기실, 분장실을 제일 사랑해요. 이곳에는 영혼이 있죠. 내 일터니까요. 여기에 오면 잡념이 없어져요. 오로지 거울과 나, 그리고 무대만 생각해요.”

몇 년 전 인터뷰로 만난 배우 박정자(78)는 공연 전 대기실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대기실에서 공연을 기다리는 순간이 가장 좋다는 노배우의 표정에는 무대를 향한 변함없는 설렘이 있었다.

올해로 배우 데뷔 58주년인 박정자가 자신의 연기 인생을 총망라하는 1인극을 지난 6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치고 있다. 공연 제목은 ‘노래처럼 말해줘’.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이래 한해도 빠지지 않고 무대에 오른 ‘연극계 대모’ 박정자의 삶을 무대서 오롯이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1인극 ‘노래처럼 말해줘’의 배우 박정자(사진=뮤직웰).


공연 부제는 ‘박정자의 배우론’이다.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박정자가 무대에서 써온 60년 가까운 역사를 작품의 연대기와 그동안 맡았던 배역들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차지하려고 그 남자를 우물에 가둬 죽여버린 엄마, 카페에서 노래하는 늙은 창녀, 남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총으로 쏴 죽인 아내, 아기를 낳자마자 탯줄로 목을 졸라 죽인 아그네스 수녀의 비밀을 끈질기게 싸고도는 원장 수녀, 스무 살 어린 남자에게 모든 걸 던진 배우까지. 박정자의 대표작 속 캐릭터들이 풀어놓는 이야기가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재즈 피아니스트 허대욱이 음악감독 겸 피아노 연주자로 무대에 함께 오른다. 총 6곡의 노래를 라이브로 연주한다. 영화 ‘페드라’ OST 중 ‘사랑의 테마’, 1989년에 발표한 독집 앨범 ‘아직은 마흔네 살’의 타이틀곡 ‘검은 옷 빨간 장미’ 등을 만날 수 있다. 최근 영화 ‘조커’에 삽입되기도 했던 스티븐 손드하임 작곡의 ‘센드 인 더 클라운즈’로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다.

음악을 따라 펼쳐지는 공연에서 박정자는 자신이 연기한 작품 속 인물들로 발언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묘사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배우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다. 공연 기획자 및 연출가 출신으로 현재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유리가 연출로 참여했다. 이유리 연출은 “이 공연의 장르는 박정자 자체”라며 “박정자 선생님과의 본질적이고 치열한 시간은 연극이 구도의 과정임을, 삶이 끝없는 깨달음임을 다시 추스르는 귀하고 겸허한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이유리 연출 외에 공연계 내로라하는 스태프들이 하나로 뭉쳤다. 박정자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11월의 왈츠’의 작가 이충걸, 뮤지컬 ‘스위니토드’ ‘레베카’의 무대 디자이너 정승호, 의상 디자이너 진태옥 등 베테랑 스태프들이 이번 작품을 위해 드림팀을 구성했다.

“한 생애는 음악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음악은 한 생애만으론 충분히 표현될 수 없어요. 조명이 꺼지고 커튼이 내려오기를 바라는 지금, 내겐 아직 부를 노래가 많이 남았으니까요.” 지금도 박정자는 대기실에서 들뜬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공연은 오는 16일까지.

1인극 ‘노래처럼 말해줘’의 배우 박정자(사진=뮤직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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