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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에 대한 ‘맞불카드’는 잠시 보류했을 뿐, 포기한 것은 아니다”면서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방안, 세계 무역기구(WTO)제소를 하는 방안 등을 놓고 저울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8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일본 수출규제 대응 관계장관회의,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의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문재인 대통령 주재의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잇따라 열고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결국 이를 반영한 전략물자수출입 고시 개정안 발표를 유보했다.
시장에서는 일본이 수출규제를 강화한 핵심소재 3개 중 1개인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허가를 내 주면서 일본의 태도 변화가 감지되자 사실상 백색국가 배제를 철회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지만,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본이 규제 강화 품목 가운데 1건에 대해 수출 허가를 내준 배경은 우리가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을 때에 대비해 명분을 축적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정부가 고시 개정안 발표를 잠시 검토를 위해 보류한 것이지 중단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가 당시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시간을 두고 검토하기로 한 것은 자칫 ‘맞불카드’가 WTO 제소에 독(毒)이 될 수 있다는 모순점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일본의 수출 규제가 WTO 규정 위반이라는 점을 들어 WTO 제소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주된 공격의 논리는 일본의 수출 규제는 회원국이 수출허가 등을 통해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지 못하도록 의무화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11조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일본도 똑같은 논리로 한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일본이 수출 허가를 내준 사례를 내세울 경우 WTO에 제소할 명분마저 사라질 수 있다. 이에따라 ‘맞불카드’를 꺼내들 경우 오히려 우리가 발목을 잡힐 가능성에 대해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일본의 WTO 협정 위반은 수출허가 1건으로 무마할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라며 “WTO 제소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WTO 제소를 하더라도 3~5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터라 실효성이 낮은 만큼 정부가 WTO제소 카드를 버리고 백색국가 배제 등과 같은 좀더 공세적인 ‘맞불카드’를 꺼내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의 공격에 수세적으로 방어만 하다보면 시장의 피해가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WTO에 제소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막상 승소하더라도 그간 우리 기업들이 시장에서 도태할 경우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WTO에서 승소한다면 추후 일본이 다시는 비슷한 보복조치를 할 수 없도록 막는 효과가 있다”면서 “WTO분쟁이 제기되는 와중에 양국이 타협해서 합의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WTO제소 카드를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