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최근 이런 방침을 밝히며 ‘전세 대출 규제’ 논란도 잠잠해지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는 여론 반발에 따른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초 전세 보증에 소득 제한을 신설하려 했던 취지를 고려하면 단순 민심 달래기 차원을 넘어서 섬세한 정책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이번 논란의 쟁점과 전세 대출 수요자의 주요 궁금증을 팩트체크 형식으로 정리했다.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정부는 애초 방침대로 부부 합산 연 소득 7000만~1억원 초과 가구의 주택금융공사 전세 보증 이용을 제한하면 전세 대출을 아예 받을 수 없다는 것은 과장된 말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와 SGI서울보증도 전세 보증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주택금융공사의 전세 보증 상품이 대출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고 집주인 통지나 동의 절차가 필요치 않은 등 이용이 간편한 장점이 있다. 전세 보증금은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실상의 채권자인데, 주택도시보증공사와 서울보증보험 보증 상품은 은행이 세입자 채권에 우선 변제권을 갖는 질권을 설정하거나 채권을 넘겨받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하지만 보증기관별 상품 성격이 달라 대출 금리 등 장·단점을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일례로 주택금융공사의 전세 보증은 대출자가 부담하는 보증료율이 낮지만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심사해 보증 한도를 결정하는 만큼 대출 한도액도 3개사 중 가장 적다. 반면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 보증을 이용하면 대출 금리가 약간 올라가는 대신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을 위험까지 함께 보장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서울보증의 경우 대출 금리가 주택금융공사 상품보다 0.5%포인트 정도 높으나 대출 한도가 가장 높고 이자에 보증료를 포함한 구조여서 단순 금리만 보고 상품 간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고 각 기관은 강조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택도시보증공사는 국토교통부 산하의 준시장형 공기업이므로 정부가 가계 부채 대책을 만들면서 주택금융공사 전세 보증에 소득 기준을 신설하면 부처 간 협의를 거쳐 같은 기준을 적용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서울보증은 예금보험공사가 지분 90% 이상을 보유한 최대 주주이지만 민영 기업이기 때문에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 지원하면 안 되나
일각에서는 주택금융공사가 고소득층에게 전세 보증을 지원하는 것이 왜 문제냐고 의문을 품는다. 공사도 전세 보증을 취급하면서 대출자에게 보증료를 받는 만큼 수익이 발생하는 사업이라면 굳이 이용 대상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보증 지원을 확대해 보증료 수입을 늘어나면 이를 저소득층 지원에 쓸 수도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공사는 전세 보증이 마진은커녕 손실이 나는 사업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주택금융공사의 ‘2018년도 자금 수입 및 지출 계획’을 보면 올해 공사의 보증료 수입액은 1330억원, 전세 보증 등을 이용한 대출자가 대출금을 갚지 않아 금융회사에 돈을 대신 갚고 구상권을 활용해 회수한 수입액이 1214억원이다. 반면 은행 등에 대출금을 대위 변제한 지출액은 2805억원에 달한다. 전세 보증 등 신용 보증 사업으로 한 해 260억원가량의 손실을 떠안는 셈이다.
이 손실액이 주로 빚 상환 능력이 낮은 저소득층 지원 때문에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공사의 보증 상품 주 이용자가 이미 중간 소득층 이상이라서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실이 주택금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사 보증을 받아 은행이 자체 재원으로 공급한 전세 자금 대출액 총 14조1299억원 중 82%(11조5350억원)는 대출자 개인 소득이 연 3000만원을 넘는 계층이었다. 연 소득이 1억원을 넘는 사람(소득 미입력자 포함)에게 지원한 대출액도 8384억원에 달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이런 추세가 더 가속해 전체 공사 보증을 통한 전세 자금 대출액 9조5653억원 중 연 소득 1억원 초과자 대출액이 5246억원으로 연간 기준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주택금융공사 관계자는 “전세 대출 보증액을 떼이는 것은 주로 사기 대출 때문”이라며 “공사로서는 사실상 이익이 마이너스(-)인데도 매년 은행·신협·농협·수협·새마을금고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5000억~6000억원 정도 출연금을 받는 덕분에 그나마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가 전세 보증 지원 등에 활용하는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은 정부와 금융기관 출연금 등을 주 수입원으로 하는데, 이 같은 재정이나 민간 자금 지원 등으로 손실을 메꾸는 구조라는 것이다.
보증 지원을 대폭 늘리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주택금융공사법 상 공사가 관리하는 기금의 신용 보증액은 정부·금융기관 출연금(기본 재산)의 30배를 넘을 수 없다. 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의 개인 신용 보증 잔액은 작년 말 현재 68조7294억원으로 기본 재산(약 6조원)의 11배 수준이다. 공사 관계자는 “법상 기본 재산의 최대 30배까지 보증을 늘릴 수 있지만, 갑작스러운 경제 환경 변화 등에 대비해 보증액을 15배 범위 안에서 운영하고 있다”며 “신용보증액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한정된 보증 재원을 어느 계층 지원에 사용해야 하는지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주택금융공사의 전세 보증을 소득 심사 없이 지원할 경우 취약 계층이 고소득층에 밀려 혜택을 박탈당하거나 연 소득이 1억원이 넘는 고소득자까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송인호 연구위원이 지난해 내놓은 ‘월세 비중의 확대에 대응한 주택 임대 정책 방향’ 보고서를 보면 월세 거주자의 전체 소득에서 주거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RIR)은 2016년 기준 32.1%로 전세(22%)보다 10.1%포인트 높다. 주로 소득이 적은 청년층과 고령층이 월셋집에 거주한다. 월세 사는 저소득층에게 전세, 자가로 올라가는 ‘주거 사다리’를 제공하기 위해 한정된 재원으로 고소득층 지원을 줄이고 취약 계층 보증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금융 당국의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