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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재개발 14개 조합 이달 총회 개최
업계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 정릉동 정릉골구역 주택재개발조합은 지난 23일 정기총회를 열고 정비사업비 예산 편성, 감정평가업 선정, 협력업체 선정 추인 등의 안건을 승인했다. 서울에서 조합설립 인가를 마친 재개발 지역 46곳 중에 정릉골을 포함해 미아2, 신림2, 상계1·2·5, 노량진 1·4·5, 제기 6, 정릉골, 안암2, 수색8 등 14개 조합이 이달 총회를 열었거나 개최 예정이다. 총회에서 대부분 사업비 확정과 협력업체 선정 등 유사한 안건을 논의한다.
이처럼 총회를 몰아쳐서 하는 것은 도정법 개정에 따른 계약업무 처리 지침 때문이다. 이 지침에 따르면 내달 9일부터 건설 공사는 규모가 6억원을 초과할 경우, 그 외 공사는 2억원을 넘어서면 계약을 공고할 때부터 전자입찰로 진행해야 한다. 대부분의 재건축·재개발 공사 규모가 이를 넘어서기 때문에 조달청의 전자조달시스템 ‘누리장터’를 통한 전자입찰이 의무화된다. 특수한 설비나 기술자재가 필요한 경우나 재난복구 등 긴급한 상황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명·수의계약이 불가능하다.
재개발 사업은 통상 기본계획 수립→안전진단→정비구역지정→조합설립추진위 승인→전문관리업자·설계자 선정→조합설립 승인→사업계획 승인→시공사 선정→관리처분계획 인가→이주 및 철거→분양 및 착공→준공 및 입주 순으로 이뤄진다.
이 중 사업시행계획 승인은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지질조사나 문화재 지표조사, 석면조사, 친환경인증, 학습환경보고서 등 여러 협력업체 선정에 들어간다. 다음달 9일부터는 이들 대부분을 전자입찰을 통해 일반경쟁입찰로 선정해야 한다. 한 재개발 조합 관계자는 “전자입찰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경우 추진 일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어 조합원 입장에서도 안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개발 사업 비리 없어지나
현재 계약을 위한 절차를 어느 정도 진행했다면 다소 지체되는 면은 있겠지만, 아예 백지상태라면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 재개발 사업이 보통 10년 이상씩 걸리는 것에 비하면 시스템 숙지에 걸리는 시간은 사업을 크게 지연시킬만한 요인은 아니라는 분석도 많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자입찰로 진행한다고 해서 공고 기간이 더 길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업지체가 주요 요인은 아닐 것”이라며 “조합원 입장에서는 오히려 절차가 투명해지고 입찰 참여자는 편리해지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보다는 그동안 재개발 업계에 만연했던 관련 업체와의 결탁이나 뒷돈 거래 등이 막히기 전에 서두르는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최근 서울 시내 재개발 조합들이 도정법 개정을 앞두고 몰아치기 총회를 하는 분위기”라며 “절차가 깐깐해지기도 하지만 투명해지면서 기존 조합과 업체 간 짬짜미나 리베이트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한 이유도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관련 업체와의 유착으로 홍역을 치른 경우가 적지 않다. 도정법 개정안 시행 전에 몰아치기 총회를 하다 보니 일부 조합원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사업비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거나 조합 측이 너무 빨리 업무 처리를 진행하면서 조합원들의 이익은 등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릉골 재개발 조합원은 “사업비가 생각보다 많아 조합원 부담도 늘어날 것 같은데 총회에서 바로 통과됐다”며 “총회를 평일에 열고 개최 사실도 촉박하게 통보해 조합원들이 제대로 안건을 살펴볼 여지도 없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주무부처인 국토부에는 최근 재개발 조합 총회를 두고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데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문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차흥권 법무법인 을지 대표변호사는 “재개발 관련 업무 처리가 전자입찰 시스템으로 바뀌면 조합 임원들이 원하는 용역업체를 선정하기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라며 “도정법 개정으로 그동안 협력업체 선정 등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이 상당 부분 시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