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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날까지 대본 '깜깜'…배우도 떨리는 무대

장병호 기자I 2017.08.24 05:30:00

내달 개막하는 2017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연극계 스타 배우들 1인 즉흥극 도전
31일간 7개국 17개 단체 17개 작품 선보여

2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카페에서 열린 2017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기자간담회. (왼쪽부터)배우 하성광, 김소희, 손숙, 연출가 이윤택, 송선호, 윤시중(사진=SPAF 사무국).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제목이 ‘하얀 토끼 빨간 토끼’인데 이게 무슨 뜻이에요?”(배우 손숙) “그것도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대본을 받아보면 나중에 알 수 있습니다.”(이병훈 SPAF 연극 프로그램 디렉터)

손숙·이호재·예수정·하성광·김소희·손상규 등 연극계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색다른 도전에 나선다. 대본의 내용도 제목의 의미도 모르는 연극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것이다. 오는 9월 15일 개막하는 2017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이하 SPAF)에서 국내 초연하는 1인 즉흥극 ‘하얀 토끼 빨간 토끼’를 통해서다.

이 작품은 사전 리허설 없이 배우가 공연 당일 대본을 받아 공연한다. 연출가가 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 하나, 공연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로 공연장에 와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배우가 출연하는 공연을 보는 것도 금지다. 이란 작가 낫심 술리만푸어가 2010년 집필한 작품으로 2011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초연해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일 대본 공개…“설레면서 긴장”

22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씨어터카페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들은 설렘과 긴장을 나타냈다. 손숙은 “처음 작품 제안을 받고 ‘연출 없는 연극’도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 부담 없이 출연을 결심했다”면서 “공연 날짜가 조금씩 다가오니 걱정이 된다. 관객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소희는 “다른 배우의 공연을 볼 수 없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6명의 배우 중 마지막 순서로 무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그는 “함께 참여하는 배우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표현할지 관객 입장에서 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 아쉽다”면서 “관객에게는 새로운 체험이 될 것 같아 기대도 크다”고 말했다.

‘하얀 토끼 빨간 토끼’는 SPAF가 올해 야심차게 선보이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SPAF는 2001년 서울무용제와 서울연극제를 통합해 처음 선보인 축제다. 2004년 서울무용제와 서울연극제가 별도 행사로 다시 분리된 뒤에도 명맥을 이어오며 국내 최대 규모의 순수공연예술축제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한다.

올해는 총 31일간 7개국 17개 단체의 17개 작품을 선보인다. 주제는 ‘과거에서 묻다’다. 이병훈 SPAF 연극 프로그램 디렉터는 “과거에는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내일 당장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과거를 반추해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취지로 주제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2017 SPAF 해외 초청작 ‘위대한 조련사’의 한 장면(사진=SPAF 사무국).


△17회째 맞은 SPAF…국내외 대표 공연 소개

주목할 작품 중 하나는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연출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와 공동제작한 ‘위대한 조련사’다. 파파이오아누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명선 SPAF 무용 프로그램 디렉터는 “‘위대한 조련사’는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는 작품으로 올해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해 호평을 받았다”며 “올해 SPAF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개막작과 폐막작으로는 루마니아 연출가 실비우 푸카레트의 ‘줄리어스 시저’와 영국 현대무용가 아크람 칸의 ‘언틸 더 라이언즈’를 각각 선보인다. 프랑스에서 온 얼음인형극 ‘애니웨어’, 아일랜드 데드센터의 ‘수브니르’ 등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도 함께 소개된다. 캐나다 출신 카롤린 로랭 보카주가 안무한 4시간짜리 야외 무용극 ‘추억에 살다’도 만날 수 있다.

국내 초청작 중에는 지난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랐던 연출가들이 이끄는 극단의 작품들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연희단거리패의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극단 하땅세의 ‘위대한 놀이’ 등이다.

극단 하땅세의 대표인 연출가 윤시중은 “블랙리스트 덕분에 만든 작품을 이번에 선보이게 됐다”면서 “정권은 바뀌었지만 블랙리스트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고 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희단거리패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연출가 이윤택은 SPAF의 정체성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윤택 연출은 “SPAF는 그동안 한국의 연극적인 문법을 수용하는데 소홀했다”면서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가혹한 비판과 함께 한국 연극의 레퍼토리가 계속 이어지는 축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SPAF는 올해부터 서울아트마켓(이하 PAMS, 10월 16~19일)과 연계해서 열린다. 김선영 예술경영지원센터장은 “한국의 공연예술계는 SPAF와 PAMS라는 큰 자산을 갖고 있다. 전 세계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대학로라는 공간도 있다”면서 “올해는 SPAF·PAMS·대학로를 접목시켜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나는 첫 해로 삼고자 한다”고 포부를 나타냈다. SPAF는 9월 15일부터 10월 15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열린다.

2017 SPAF 개막작 ‘줄리어스 시저’의 한 장면(사진=SPAF 사무국).
2017 SPAF 폐막작 ‘언틸 더 라이언즈’의 한 장면(사진=SPAF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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