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조철현 건설부동산부장] 정부가 또다시 ‘뒷북 대책’을 내놨다. 분양아파트 집단대출 규제를 담은 ‘11·24 가계부채 대책’이다. 잔금대출에도 원금과 이자를 쪼개서 갚아 나가도록 한 게 대책의 뼈대다. 그동안 규제에서 빠졌던 아파트 잔금대출에 메스를 들이댔지만 ‘8·25 가계부채 관리 방안’ 발표 이후 석 달 만에 나온 뒷북 대응이라는 지적이 많다. 집단대출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증한 점을 감안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대책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지난해 6월 주택담보대출 심사를 강화하면서도 분양시장 위축에 따른 경기 침체를 우려해 집단대출은 예외로 둔 것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올해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적용 필요성이 거론됐지만 정부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미 가계 빚이 1300조원까지 불어나서야 뒤늦게 적용 방침을 발표하면서 사후약방문 처방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게 된 것이다.
뒷북 대책은 늘 그렇듯 강도가 생각보다 세다. 이번 대책도 그렇다. 집단대출이 잔금대출로 전환되는 입주 시점에 원금과 이자를 모두 낼 수 있는 자금력을 갖춘 자만 집을 사라는 것으로 주택 수요를 한방에 옥죌 수 있을 만큼 파급력이 크다.
뒷북 대책이라도 효과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이번 대책이 ‘가계부채 증가 억제’라는 효과를 낼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잔금대출 규제는 내년 1월 1일 이후 분양하는 아파트 단지부터 적용된다. 2~3년 후인 2019년부터 집단대출 규제가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얘기다. 정부 역시 연간 1조원 정도의 감축 효과만 예상할 정도다. 이마저도 2019년 이후에나 효과를 볼 수 있다. 한 분기에 가계부채가 40조원 가까이 증가하는 판에 효과가 미미하기 그지 없다.
문제는 뒷북 대책이 단순히 뒷북 행정으로 끝나지 않는 데 있다. 바로 부동산시장 충격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초 분양권 전매 제한 및 청약 요건을 강화한 ‘11·3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거래가 줄고 가격 상승세도 한풀 꺾였다. 대책의 주요 타깃인 서울 강남권 재건축 대상 단지는 호가가 순식간에 1억원 넘게 빠졌다. 이런 국면에 정부가 집단대출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으니 주택시장이 추락하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다. 실제로 이달 들어 서울 아파트값은 2년만에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명분은 가계부채 대책이지만, 충격은 부동산시장에 곧바로 전이되는 양상이다. 11·24 대책이 정책 목표인 가계부채는 못잡고 오히려 내수를 지탱하던 부동산시장 발목만 잡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부작용은 부동산시장 침체 뿐만이 아니다. 집단대출에 사실상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적용되면서 담보물건이 없는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집 마련 기회가 더 멀어진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잔금 조달이 여의치 않아 입주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면서 자칫 입주 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출 규제로 전세 수요가 늘어 전세난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부동산 경기가 꽁꽁 얼어붙을 경우 금융권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집값 거품이 꺼지면서 주택담보대출 부실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결국 은행 부실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오락가락한 정책도 문제다.정부가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부추긴 게 언젠데, 이제는 사실상 그만두라며 등을 떠밀고 있다. 일관성 없는 대책이 반복되면서부동산시장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국민 신뢰를 잃은 정책은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없다. 가계부채 관리든, 부동산 규제 대책이든 중요한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를 곧추세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