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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세일즈맨이나 알고 있을 법한 랭킹도 있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자동차의 컬러는 흰색, ‘솔리드화이트’란다. 23%가 굴러다니고 있다. 다음으로 블랙과 실버, 그레이가 각각 15%고, 살짝 반짝이를 뿌린 펄화이트가 11%란다. 상위 5%가 무채색인 셈이다. 나머지 파랑, 빨강, 갈색 등을 다 합쳐야 21%에 불과하다. 미국 한 조사에 따르면 경제가 어려울수록 화이트계열의 자동차를 선호한다는데 요즘대로라면 거리의 백색카 행진은 한동안 이어질 듯하다.
여기서 로또번호와 자동차컬러의 공통점을 찾아내라면? 답은 ‘랭킹’이다. 성적이나 성과에 따른 순위 말이다. 어째서? 인정할 건 인정하자. 세상은 온갖 랭킹으로 이뤄져 있다. 평등, 자유, 정의? 다 좋다. 하지만 그 끝은 랭킹이다. 가공할 자원보다, 운용할 공간보다, 고용할 인원보다 항상 차고 넘치는 풀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혹은 어쩔 수 없이 죽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 ‘줄’이 된 탓이다. 경쟁한다는 건 순위가 매겨진다는 것. 정치인은 여론조사와 선거로 정해지는 권력서열에 목숨을 걸고, 재벌은 곳간을 채우고도 넘치는 부를 얻었지만 여전히 재계서열에 자존심을 건다. 하루 걸러 한번씩 나오는 OECD 어떤 순위가 국가 정체성을 가름하고, 내가 좋아서 하는 축구와 사실 별 상관도 없는 피파랭킹이 신경을 긁는다. 출판계는 베스트셀러, 영화계는 박스오피스, 가요계는 음원판매 순위에 사활을 건다. 학교는 등급과 등수가 전부다.
책은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랭킹을 한눈에 펼쳐낸 백과사전처럼 보인다. 한국사회의 오늘을 흔들어놓는 키워드와 이슈, 인물을 빼서 기둥에 세웠다. 창업·취업, 금융과 부동산 등 소비영역을 비롯해 결혼과 이혼, 이주와 주거 등 라이프스타일, 정치·사회·공직·국방 등 공공영역, 또 문화와 교육까지, 나를 둘러싼 세계에 거미줄 망처럼 얽힌 별별 랭킹을 모조리 공개한다. 참고로 기준은 2014년이다.
▲대통령보다 연봉 더 받는 ‘간 큰’ 공무원
한국서 연봉이 가장 높은 공직자가 대통령일까. 아니다. 대통령보다 연봉을 더 받는 ‘간 큰’ 공직자는 한국은행 총재다. 2억 7727만원을 받는다. 2·3위가 모두 한국은행 차지다. 부총재와 감사가 2억 5508만원, 2억 4399만원씩을 수령했다. 대통령은 그 뒤를 이은 4위로 2억 505만원, 5·6위를 차지한 국무총리와 국회의원이 각각 1억 5896만원, 1억 3796만원을 찍었다.
공공기관장의 명세서도 들여다보자. 1위의 한국과학기술원장이 3억 2520만원, 2위의 강원랜드 사장이 2억 4058만원. 한국의 312개 공공기관장 연봉을 합산하면 413억원에 달한단다.
어차피 뻔한 순위겠지만 대기업 총수의 연봉도 줄세워 보면, 1위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215억 7000만원을 받았다. 2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178억원을, 3위 정상돈 한국철강 회장은 92억원을 챙겼다. 확실한 성과법칙에 따라 20위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40억원 정도니, ‘직장인’이 그렇듯 총수라고 다 같은 총수가 아닌 셈이다.
▲보험사기 유형의 1위는 ‘음주·무면허운전’
심심찮게 사회면에 뜨는 보험사기에도 순위가 있다. 2014년 건수를 모아봤더니 사기액수는 5997억원, 적발인원이 8만 4335명에 이르더란다. 손해보험이 93%, 그중 자동차 관련이 72.5%였다. 그렇다면 1위를 장식한 보험사기는? ‘음주·무면허운전’이었다. 1만 9749명을 적발했다. 2위는 운전자 바꿔치기, 3위는 사고내용 조작. 상위 3건을 합친 금액만 2381억원이고 인원은 4만 4858명이다. 전체 보험사기 금액과 인원의 절반 수준이니, 그저 ‘옷깃만 스쳤을 뿐인데 전치 4주’라는 거래가 충분히 성립될 만한 ‘사기현장’인 셈이다.
허를 찌르는 순위도 있다. 아파트공화국의 아파트랭킹. 주택을 기준으로 아파트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따져봤더니 전국 도시에서 서울(42.6%)은 고작 14위에 불과하더란 거다. 1위는? 광주(전라·65.7%)다. 아파트가 주택 사이에 산처럼 솟아 있는 모양이다. 이어 대전(57.5%), 경기(56.9%), 울산(56.6%), 인천(55.4%), 대구(52.7%), 부산(51.5%)의 순. 모두 전국 평균(49.6%)을 넘긴다. 귀촌을 꿈꾸는 인구가 늘고 있다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에게 아파트는 ‘꿈꾸는 성’이다.
▲랭킹, 번호 그 이상의 의미
정리하는 셈 치고 한국에 걸린 각종 국가지수를 따져보자. 브랜드가치 16위, OECD 삶의 질 25위, 국가경쟁력 26위, 언론자유 60위, 반부패지수 43위, 노인복지 60위, 실제 은퇴연령 2위(71.1세), 생활비 8위(서울). 이 볼품없는 순위 탓인가.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술 먹는 하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한국보다 더한 나라가 14개가 더 있다는 사실. 이쯤되면 랭킹이 말하려는 핵심을 다시 봐야 한다.
일단 재밋거리가 쏠쏠하다. 식상한 통계를 걸러낸 것이 주효했고 빈틈을 공략한 키워드로 관심을 뒤엎은 의미도 있다. 공들여 정리하고 그려낸 도표와 그래픽에도 신뢰가 간다. 하지만 재미 이상의 무게가 제법 묵직한 건 등수 매기기가 말하는 행간을 읽으란 암시가 전해져서다. 왜냐고? 순위는 권력이니까. 세상의 모든 눈을 한곳에 집중케 하는 거대한 영향력이니까. 돈이고 명예고 무엇보다 미래니까. 그렇다고 랭킹이 가치를 그대로 치환한다고 하겠나. 역설적이지만 랭킹이 숫자 그 이상의 의미를 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