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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신경숙·박은주? 신데렐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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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15.08.03 06:18:00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부장] 출판계의 속이 타들어 간다. 신경숙 표절사태에 이어 박은주(58) 전 김영사 사장이 김강유(68) 현 회장을 350억원 배임·횡령·사기 혐의로 고소하는 메가톤급 사건이 터진 탓이다. ‘펜이 그래도 말보다 낫다’는 한줄기 신뢰까지 끊어내지 않을까 몸이 단다. 만년불황의 출판계는 ‘제발 현상유지만이라도’에 목을 매고 있고 있지 않은가나. 그러나 어쩌겠는가. 사정이야 딱하지만 이미지 회복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

문화계가 그렇다. 연대책임이란 게 있다. ‘그림 커넥션’ 파문을 일으킨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 탓에 미술시장은 찬물을 뒤집어썼다. 한동안 아무도 대놓고 그림을 산다고도, 판다고도 말하지 못했다. 공연계도 마찬가지. 배우·스태프의 임금지불을 방기해온 제작사 문제가 불거졌을 때 나머지 ‘착한’ 극단·제작사는 ‘싸잡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더 답답한 건 어떤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

박 전 사장으로 돌아가 보자. 1983년에 창립한 김영사는 그냥 고만고만한 출판사였다. 1989년 6년 근무한 박은주란 편집자를 사장으로 앉히기 전까진. 상황은 뒤집혔다. 그냥 성공도 아니다. 30여년간 3000여종을 낸 김영사의 리스트에는 100만권 이상 판매한 메가히트가 줄을 선다. 판매도 판매지만 그들 한권 한권은 출판계의 판도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었다.

시작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자서전인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1989)였다. 출간 6개월 만에 100만부가 팔렸고, 책 한 권 내보려는 정·재계 인사를 줄세웠다. 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선 출사표 격의 책을 여기서 냈다. 이어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1994),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1998), 허영만의 ‘식객’(2003),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2010)가 차례로 터졌다. ‘성공하는…’은 7가지란 유행을 이끌며 ‘성공하는 10대’ ‘성공하는 가족’ 등의 붐을 이뤘다. ‘먼나라…’ 시리즈는 학습만화시장을 다졌다. 1998년 부도가 난 고려원미디어에서 옮겨온 ‘먼나라…’는 김영사 로고를 달고 누적판매부수 1700만부를 기록했다. ‘정의…’는 책 읽기 버거운 40~50대 남성독자층의 손에 한 권씩 들리면서 때아닌 인문학의 봄꽃을 피웠다. 출간 11개월 만에 밀리언셀러에 진입, 200만부 고지도 가뿐히 넘기며 한국사회에 수년간 ‘정의’ 신드롬을 이끌었다.

돌아보면 굳이 한 분야를 고집하지 않은 다채널이 먹혔다. ‘세계는 넓고…’가 나올 당시는 ‘책은 곧 사회과학’이던 때였다. 모두가 그 하나에 목을 매고 있을 때 박 전 사장은 벽 너머를 보고 있었다. 출판여왕이란 수식은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그래서 독자와 시장은 당혹스럽다. ‘신경숙이니 박은주니 모두 그네들의 사정’으로만 내버려둘 수 없는 건 출판계에 ‘배신의 시대’를 열어젖힌 탓이다. 마음의 양식, 지식의 전당, 원형 콘텐츠 등 출판에 걸린 원초적 명맥은 모조리 추락했다. 그래 안다. 세상은 원체 상식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의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상식이다. 신화는 없는 거다. 아니 없어야 한다. 신화를 갈구하는 생각 자체가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200만부를 팔아치운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 매였던 신경숙도, ‘미다스의 손’만 바라보던 김영사 신·구 경영진의 싸움도 따지고 보면 신화창조를 버리지 못해 생겨난 거다.

출판계가 이제부터 할 일은 하나. 상실감에 빠진 독자와 시장을 구하는 일이다. 다만 ‘깨진 신데렐라’ 같은 감각적인 호도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신데렐라라는 것도 결국 빈약한 사회문화구조가 키운 꼭두각시가 아닌가. 신화라 치켜세운 뒤 몰락했다고 소란을 피우는 것도 탐탁지 않지만, 때맞춰 ‘호박마차’를 깨뜨리는 소리는 더더욱 듣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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