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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끝내 역사 외면한 아베의 美의회 연설

논설 위원I 2015.05.01 03:00:01
사진=AFPBBNews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전 세계의 기대를 저버리고 ‘역사 세탁’에 몰두한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전범국 일본의 총리에게 전후 70년 만에 처음으로 허용한 이번 합동연설은 일본이 어두운 과거사를 정리하고 세계의 지도국으로 자리매김할 절호의 기회였으나 그는 식민지배와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사죄의 말 한마디 없이 ‘통절한 반성’이라는 영혼 없는 수식어로 얼버무리고 말았다.

아베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미군들의 영혼에 속죄하고 싶다”는 등 온갖 교언영색을 늘어놓으며 연설의 대부분을 미국에 대한 반성과 미·일 동맹 강화에 할애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의 보통국가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번 방미를 통해 확인한 양국 ‘신(新)밀월 시대’에 힘입어 그 염원을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지구 어디에서든 군사작전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은 그에게 더없이 큰 ‘전과’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을 미국과 함께 짝지어 ‘세계의 양대 민주주의 대국’으로 분류한 대목은 정말 가관이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 들러붙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려는 속셈이겠지만 위안부 문제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조차 ‘나 몰라라’하는 주제에 ‘민주주의 대국’을 운위하다니 지나가던 소도 웃을 노릇이다.

미국 조야에서 일본의 과거사 사죄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은 데도 아베 총리가 이를 철저히 외면한 것을 보면 오는 8월 15일의 패전 70주년 담화에서도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젠 우리의 대안을 생각할 때다. 중국의 급속한 세력 확대를 저지해야 하는 미국으로선 일본의 도움이 절실하겠지만 한국을 제쳐두고 동아시아 전략을 논할 입장은 못 된다. 우리의 지정학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얘기다.

미·일 관계와 별도로 한·미 동맹을 강화할 방안을 강구해야만 한다. 올여름으로 예상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가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아울러 유엔 등 국제무대를 통해 일본의 진정한 사죄를 압박하는 전략을 폭넓게 구사하는 것도 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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