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동쪽으로 500m쯤 떨어진 임시 연단 위에서는 "동족의 가슴에 발포 명령을 내린 아피싯(Abhisit) 웨차치와 총리는 당장 하야하고 의회도 당장 해산하라. 조기 총선만이 태국을 살리는 길이다"라며 고성능 확성기를 통해 선동하고 있었다. 약 1만여 시위대는 선동 구호에 따라 "옥빠이(하야하라) 아피싯!", "의회 해산!"이라고 외쳤다. 북부 치앙마이에서 와 1주일째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는 프라팟(39·농민)씨는 기념탑 아래에 마련된 천조각에 헌화하면서 "정부가 시민을 죽였다. 동족의 가슴에 발포 명령을 내린 아피싯은 더 이상 태국 총리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시위대 1만여명도 시암시티 부근의 백화점 밀집 지역 약 2㎞를 가득 메운 채 총리와 내각 사퇴, 책임자 처벌을 연호하고 있었다.
현지 방콕포스트는 "10일 오후 2~3시쯤 시위대 수백명이 '연병장을 접수하겠다'면서 민주광장 서쪽의 제1군 사령부로 몰려가고, 사령부 쪽에 집결했던 군경(軍警)이 시위대를 민주광장 쪽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총성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군경은 처음엔 소총과 M16 소총으로 고무탄과 공포탄을 발사했으나 얼마 후 실탄을 사용했다.
이번 유혈 참극은 1992년 유혈 쿠데타 이후 18년 만에 벌어진 첫 대규모 유혈 사태다. 민주기념탑 인근의 대치 상황은 10일 오후 늦게까지 총격전으로 이어졌으며 랏차담넌 거리와 판퐈 다리, 제1군 사령부 부근, 컥우아 거리 등 5~6곳으로 충돌지역이 확대됐다. 사망자 21명 중에는 영국 로이터통신의 사진기자인 일본인 히로유키 무라모토씨와 일반 시민 15명, 진압 작전에 나섰던 군인 5명이 포함돼 있다.
유혈 사태 발생 후 양측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아피싯 총리는 이날 오후 1시부터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5개 정당 대표와 정부 대표들을 소집, 긴급회의를 열었다. 태국 정부는 또 태국 최대의 명절이자 축제인 송끄란 축제(13~15일)를 전면 취소하고, 시민들에게 바깥출입을 자제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시위대 지도자인 나타윳(Natayuth) 사이쿠아씨는 이날 오후 민주기념탑 광장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연단에 올라 "동포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만든 아피싯 총리는 당장 의회를 해산하고 하야하라. 그리고 태국을 떠나는 것만이 사태의 해결책"이라며 요구 조건을 격상시켰다.
한편 방콕의 정정불안이 유혈사태로 이어지자 홍콩과 대만은 방콕에 대해 '여행금지'에 해당하는 '흑색 경보(black alert)'를 발령했고, 한국은 이날 방콕을 여행유의지역에서 여행자제지역으로 격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