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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한국학, 세계로 나아가는 길… ‘확산’과 함께 ‘깊이’ 집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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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훈 기자I 2025.10.09 07:00:32

김지형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 글로벌한국학 교수
“한국 문화 ‘소비’에 치중…한국에 대한 ‘이해’는 아직”
“역할 재정립 필요…마중물에서 전문가 양성까지”
“학문 투자가 곧 국익…정책 일관성·예산 지원 중요”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그동안 한국어가 세계의 언어로 발돋움했다면, 이제는 한국학이 세계의 학문이 돼야 한다.”

김지형(사진) 경희사이버대학교 대학원 글로벌한국학과 교수는 9일 한글날을 맞아 이데일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언어의 세계화가 진정한 힘을 가지려면, 그 언어를 통해 축적되는 지식과 연구가 함께 자라나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학에 대해서도 미래 국가 전략 차원에서 장기적·안정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어가 세계로 퍼지는 일과 한국을 깊이 이해하는 전문가를 길러내는 일, 이 두 가지가 나란히 나아갈 때 비로소 한국 문화의 꽃이 언어와 학문이라는 뿌리 위에 단단히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문화 ‘소비’에 치중…한국에 대한 ‘이해’는 아직”

한국 드라마·영화, 케이팝(K-pop)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한식(K-푸드)은 건강과 웰빙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 새로운 글로벌 미식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으며, 한국식 미용·화장품(K-뷰티)은 세계인의 일상 속에 스며들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는 세계인도 수백만 명을 넘어서며 한국어의 세계화는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언어와 문화는 더 이상 ‘먼 나라’의 문화가 아니다. 이미 세계 속의 감각과 언어, 생활이 됐다. 이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정신이 시대를 뛰어넘어 실천된 결과이자, 세종학당재단이 지난 10여 년간 이룬 값진 성취”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한국어 교육의 확산은 놀라울 만큼 빠르지만, 그 안에서 한국은 얼마나 깊이 ‘이해’되고 있는가”라며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전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늘었지만, 한국어가 품은 역사와 사상까지 탐구하는 이는 드물다. 한국 드라마와 노래, 음식, 화장품이 세계를 사로잡았지만, 여전히 ‘소비’만 되고 있을 뿐 ‘이해’는 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우리가 제공하는 교육 생태계가 여전히 입문 단계에서 멈춰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육 생태계 역할 재정립 필요…마중물에서 전문가 양성까지”

김 교수는 한글날은 이제 단순히 문자 창제를 기념하는 날에 그쳐선 안 된다고 짚었다. 과거 세종대왕이 백성들에게 ‘배움의 문’을 열어줬던 것처럼, 세계인들에게 ‘이해의 문’을 열어주는 날이 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제는 한국어 교육의 ‘확산 이후’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세종학당을 출발점으로 삼아 언어 교육에서 학문 연구로 이어질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세종학당은 87개국에서 252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김 교수는 “세종학당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진 세계인을 모으는 ‘마중물’이자 한국어 세계화의 핵심 거점이다. 입문자들에게 한국어의 문을 열어주고 한국에 대한 호기심을 학습 동기로 전환시켜 온 세종학당의 성과는 세종대왕의 창제 정신이 오늘날의 세계에서 실현된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세종학당이 설치된 국가는 전 세계 약 200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한국어의 확산은 여전히 전략적 확장이 필요한 단계”라고 지적했다. 이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은 잠재적 학습 수요가 크지만 인프라가 부족하다. 이들 지역에서 맞춤형 세종학당을 지속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시에 한국어 교육의 ‘확산’이 ‘깊이’와의 연결 속에서 완성돼야 한다는 진단이다. 김 교수는 “한국어 학습자들 가운데 일부가 한국의 역사와 사상, 문학과 사회를 연구하는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중심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세종학당이 언어 확산의 전초기지라면,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지식의 축적과 학문적 이해로 이어지는 통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문 투자가 곧 국익…정책 일관성·예산 지원 중요”

언어와 학문의 확산이 곧 국가 브랜드가 되고, 나아가 경제와 외교의 발판이 된다는 사실은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일본의 국제교류기금(JF)과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가 전 세계에 자국어와 자국 문화를 보급하는 데 막대한 예산을 쓰고, 독일은 괴테 인스티튜트를 통해 독일학을 지원하며, 중국은 공자학원에 천문학적 투자를 하고 있다.

이는 한국학에 대한 투자가 단순 학술 지원이 아닌 효율적인 국가 전략 투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김 교수는 “한국 전문가가 많아질수록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우리 국민이 해외에 진출할 때 만나는 장벽도 낮아진다. 한국 기업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 현지 한국학 교수, 한국 연구자들은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그들은 단순 통역자가 아니라 한국과 현지를 연결하는 문화적 가교이며, 한국의 가치를 현지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대변인”이라고 부연했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한국어와 한국학에 대한 투자는 미미한 수준이다. 아울러 정부 예산은 여전히 한국어 교육의 ‘확산’에 편중돼 있다. 정책의 연속성 역시 불안정하다. 이에 따라 전략적 정책 수립과 안정적 예산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고 김 교수는 촉구했다.

김 교수는 “한국어와 한국학의 세계화는 단기 사업이 아니다.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지속 가능한 지식 생태계 구축 과제”라며 “한국학 교수직 지원이나 연구 인프라 확충 등 전문 연구자 양성에는 예산 지원이 상대적으로 인색한데, 이는 씨를 뿌리기만 하고 나무를 기르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더욱 중요한 것은 단순한 예산의 크기가 아니라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라며 “정권의 변화나 단기적 실적에 따라 근거 없이 예산을 대폭 삭감하거나 사업 방향을 바꾸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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