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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투세 폐지, 상속세 완화 등 윤석열 정부의 부자감세 기조를 두고 정치권의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15년 전 경제사령탑인 강 전 장관을 두고 경질 여론이 들끓었던 이유도 그가 펼친 감세정책 영향이 컸다. 그러나 강 장관은 여전히 세율 인하로 인한 경제 활성화 효과가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세입을 더 늘릴 수 있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 교수들이 1970년대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정책 91가지를 비교한 결과 감세 정책은 성공한 반면 지출 증가는 대부분 실패했다”며 “1달러 세금을 변제하면 국내총생산(GDP)를 3달러 늘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상속세에 대해서도 ‘불행세’라고 지적하며 “대영제국을 망하게 한 가장 큰 이유는 70%에 달하는 고율의 상속세였다”고 강조했다. 세금 때문에 상속을 포기하는 이들이 기업을 물려받아 투자와 고용을 늘리게 된다면 법인세·소득세 등 세수는 더 증가한다는 논리다. 현 정부가 폐지 방침을 세운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해서는 “동서고금 역사를 통틀어 전례가 없고 조세 원칙에 하나도 맞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둘러싼 여야 간 갈등에 대해서도 “50여년 전 증권거래세를 두고 일어났던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최근 대규모 세수 결손 사태가 이어지며 47년 동안 동결돼온 세율 10%의 부가가치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1977년 제도 도입 당시 실무책임자였던 강 전 장관은 “한국 사람들의 심성에 맞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조세 저항에 대한 부담이 여전히 크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개별소비세의 세율을 올리거나 범위를 늘리는 게 덜 위험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사치품 소비를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개별소비세 역시 1970년대에 머물러 있는 대표적 세제다.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도전실록은 강 전 장관이 2005년 출간한 ‘한국경제 30년’과 2015년 펴낸 ‘경제위기 대응실록’을 한데 묶어 정리한 것이다. 1970년 공직을 시작한 이래 2008년 기재부 장관에서 물러날 때까지 경제관료로서의 약 40년의 경험이 이 회고록에 담겼다.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부실기업 정리, 국자통화기금(IMF) 지원자금 협상, 금융감독·중앙은행 개편 등 주요 정책을 결정했던 배경이 서술됐다. 일기를 토대로 채워 넣은 주석만 547개에 달한다.
강 전 장관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재경부 차관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기재부 장관을 지냈다. 환란이 잦아들면서 재평가는 이뤄졌지만 그는 자신을 ‘위기 때마다 욕먹은 남자’라고 일컫는다. 강 전 장관은 “그래도 예전의 위기는 정답이 있는 ‘킬러문항’이었다면 지금은 출제자가 문제를 잘못 내 정답 자체가 없는 것 같다”면서 후배 공직자들을 향해 ‘원칙론’을 강조했다. 또 “공직 경험은 공공재인 만큼 회고록을 내는 건 사회에 대한 봉사”라며 자신의 과거를 통해 미래의 해법이 등장하길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