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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진짜를 보는 안목

송길호 기자I 2023.12.26 06:15:00

하민회 이미지21대표·경영 컨설턴트

올해 사람들이 가장 주목한 단어는 ‘진짜(authentic)’. 미국 ‘웹스터’사전이 매년 단어 조회수와 검색량 등을 토대로 선정하는 올해의 단어에 ‘진짜, 참된’의 뜻을 가진 ‘어센틱 authentic’이 선정됐다. 보이는 데로 신뢰할 수 없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려진 진실성의 위기를 맞으며 오히려 진실에 대한 갈망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역설적 결과다.

가짜정보가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사람들의 감정과 판단을 흐려 놓는 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로마공화정 시대 옥타비아누스는 라이벌 안토니우스를 음해하기 위해 그가 클레오파트라에 빠져 로마를 배신할 것이란 선전문구를 동전에 새겨 퍼트렸다. 가짜뉴스의 시초인 셈이다. 판을 흔들기 위한 흑색선전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위협적이진 않았다. 워낙 품이 많이 드는데다 확산 속도가 느려서였다.

소셜미디어가 발전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극적인 호기심 끄는 제목에 의도적으로 조작된 사진과 영상으로 뉴스보도의 형식을 차용한 ‘가짜뉴스’는 강력하게 부상하고 빠르게 확산된다. MIT 연구결과에 의하면 가짜뉴스가 사용자 1500명에게 도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10시간, 진짜 뉴스 도달 시간(60시간)보다 6배나 빨랐다. 선정적이고 눈에 띄는 정보를 자주 올리고 공유하는 계정일수록 더 많은 방문자가 찾아오는 소셜미디어의 보상시스템 탓이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가짜뉴스는 발등의 불이 됐다. 하마스 기습공격 직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소식은 100만명 이상이 조회했고 SNS에서 퍼진 AI가 만든 펜타곤 폭발사진은 증시까지 흔들었다. 이 같은 허위조작정보는 여론을 왜곡할 뿐 아니라 뉴스 자체에 대한 피로감을 높이고 신뢰를 떨어뜨려 사회적인 결속을 약화시킨다.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도 우려를 낳는다. 초기에 만들어진 AI 사진에서는 부자연스럽거나 어색한 부분을 꽤 발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문가조차 구분하지 못할 만큼 정교해졌다. 클릭 몇 번만으로 얼굴부터 목소리까지 손쉽게 복제 편집할 수 있다 보니 조회수로 배를 채우려는 가짜뉴스 공장도 현저하게 늘고 있다.

내년에는 우리나라 총선, 미국 대선 등 세계 40여개국이 선거를 치른다. 끝나지 않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전에 예상을 넘어서는 기후변화, 주요 경제변수까지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가짜뉴스가 증식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이다.

해외에선 규제가 시작됐다. 프랑스에서는 정보조작대처법을 제정, 선거 전 3개월간 온라인에 허위 정보를 올리면 법원 명령 즉시 게시가 중단된다. 독일은 이용자 200만 명 이상 SNS 플랫폼 사업자에겐 허위 정보 콘텐츠나 댓글을 24시간 이내 삭제할 의무가 부여됐다.

미국의 허위정보 연구가 헬머스 박사는 가짜뉴스의 불법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누군가 ‘진실’로 간주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조작’으로 여겨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정부 든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든 ‘합의’ 중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이보다는 대중이 미디어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맥락을 읽어 정보의 진실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출발은 ‘선의의 의심’이다. 보이는 데로 말하는 데로 막연하게 믿고 감정적 동조를 하기 전에 ‘진위 여부’ 부터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식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사건일수록, 자극적이고 선정적일수록, 맥락이나 흐름에 맞지 않을수록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정보의 출처는 어디인지, 믿을 만한 기관인지, 작성자는 누구이며 실재인물인지, 영상이나 사진의 장소, 발생시간은 분명한지, 어떤 경로로 확산되었는지 등을 짚어보면 이 뉴스가 누구에게 이롭고 누구에게 불리한지 어떤 의도가 숨어있는지 이해관계까지 파악할 수 있다.

선의의 의심은 자신과 다른 의견도 수용할 수 있는 ‘인지적 겸허’로 연결된다. 진짜를 보는 안목은 AI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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