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임진모의 樂카페]장수하는 아이돌

김현식 기자I 2023.08.28 06:30:00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사진=이데일리DB)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아이돌 수명은 7년’. 음악관계자들이나 팬들이 아이돌 그룹을 얘기할 때 흔히 들먹이는 말 중 하나다. 7년이란 숫자를 못 박고 있지만 그 속에는 아이돌은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7년을 넘기기가 힘들다’, 다시 말하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가 깔려 있다. 1996년 활동을 개시한 1세대 아이돌의 영웅 H.O.T.부터가 경천동지의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거대한 위세를 과시했지만 5년 만인 2001년 해체했다.

굳이 7이라는 숫자를 동원하는 것은 7년을 넘긴 사례가 별로 없을뿐더러 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계약서에 전속계약 기간이 최대 7년으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도 분석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솔직히 대중이 체감하는 아이돌 활동기간은 7년이 아니라 더 짧을 수도 있다. 특히 거대 기획사 출신의 아이돌은 데뷔 초에 대중적 관심이 몰리는 탓에 해체를 떠나 성수기를 기준으로 치면 ‘유효’ 활동기간은 더 짧아진다.

특히 아이돌과 심정적 조화를 느끼지 못하는 기성세대는 아이돌 관련 얘기만 나오면 말끝마다 “요즘 애들은 나왔다가 금방 사라지니까 누가 누군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불평조로 지적한다. 그러면서 “우리 때는 오래갔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리면서도 은연중에 시대차를 강조하곤 한다. 그룹의 경우 과거에는 장수, 지금은 단명이라는 이러한 일반 인식의 늪은 확실히 깊다.

결코 그렇지가 않다. 지금 아이돌은 압도적으로 대부분 그룹이기 때문에 솔로가수에 비해 턱없이 적었던 과거의 그룹과 단순 비교가 어렵긴 해도 기성세대의 선입견과 달리 의외로 롱런하는 사례들이 즐비하다. 일례로 글로벌 슈퍼스타 BTS(방탄소년단)는 올해 활동 10년을 넘겼다. 최근 솔로 움직임으로 이동했지만 그들의 10년 커리어를 아는 어른들은 많지 않다. 일본에서 K팝을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트와이스의 경우도 2015년에 데뷔, 어느새 8년의 역사를 쌓았다.

인기의 기복을 타지 않는 특급 아이돌 세븐틴 역시 8년 궤적을 그려냈다. BTS 못지않은 해외진출 성공기를 써내고 있는 현존 최고의 걸그룹 블랙핑크는 왠지 몇 년 되지 않은 것 같지만 그들도 2016년에 출발, 징크스 7년을 막 통과했다. 올해 해외 순회공연 관객동원의 막강기록을 보면 그들의 이력은 멈출 기색이 아니다.

이에 반해 오래 활동했을 것 같은 과거 그룹들을 보면 놀랍게도 활동연한이 길지 않다. 1980년대 록의 전설 들국화는 1983년 결성한 뒤 2집을 낸 뒤 얼마 후 해체, 오리지널 멤버가 같이 뛴 것은 4년도 채 되지 않는다. 입대와 취직으로 인해 활동의 어려움을 겪은 산울림도 3형제가 함께 밴드의 울림을 전한 것은 다 합해 4년 정도다. 서태지와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1992년부터 은퇴 선언한 1996년까지 딱 4년이다.

전설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이돌의 수명이 길게 나타나고 있는 것에는 기획사의 지배와 체계적 관리가 크게 작용할 것이다. 시간을 요하는 해외진출이 인기 아이돌에 필수적 플랜이 된 것도 활동기간이 늘어나는 요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근래 아이돌이 과거 그룹들처럼 연고와 친교는 부재하지만 연습생 시절 하루 10시간이 넘는 혹독한 퍼포먼스 강훈, 성공에 대한 열망, 팀 결속력의 중시 등에 의해 끈끈한 멤버십이 구축된다는 사실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솔직히 K팝이 수확 중인 전지구적 성공의 진짜 요인은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만나 강한 동료애를 쌓아가는 과정에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는 마음을 열고 팀 동료를 포용하는 자세, 그 인적 요소를 전제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멤버들의 노고와 인간승리의 측면이다. 장수 아이돌 사례의 증가는 필연적이다. 이제 ‘아이돌의 시간은 짧다’는 속설은 거둬들여야 한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